[시모니야 러 IMEMO소장 방한 인터뷰]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37분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이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동북아 각국의 외교 행보가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해졌다. 평화포럼(이사장 강원용·姜元龍)이 개최하는 국제회의 참석차 서울에 온 러시아의 동아시아 전문가 노다리 시모니야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을 방형남(方炯南)국제부장이 3일 만나 러시아의 한반도정책과 주변 강대국의 역학관계 등을 들었다.

시모니야 소장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의 안보담당 고문을 지내며 한-러 수교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소속인 IMEMO는 대외정책을 수립하는 핵심 연구기관으로 박사급 이상 연구인력이 460여명이나 된다. 외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시모니야 소장의 전임자.

▼푸틴 대북포용정책에 일조▼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해져 북한 러시아 중국 등 3국의 관계 변화에 특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3국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작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대북 포용정책에 큰 도움이 됐다. 물론 남북관계의 전환점은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가서 미사일 발사유예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올해 출범한 조지 W 부시 미 정부가 걸림돌로 부상했다. 그는 북한을 안 믿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최근 모스크바 방문을 통해 유럽 등 미국의 우방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포용정책은 북한과 조금씩 관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러시아가 5억달러나 투자할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결 협정을 맺은 것도 그 일환이다. 철도가 완성되면 남북한에 동시에 정치 경제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에서 논란이 있었는데….

“어떤 면에서 동의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미군이 남한에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데 김 대통령과 합의를 보았다. 그의 태도가 갑자기 변한 것은 미국이 변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핵프로그램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의 동결은 물론 재래식 전력의 휴전선 철수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재래식 전력 문제는 남한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사안이다. 그래서 북한이 미군철수를 거론하고 나온 것이다. 미국의 태도는 매우 미숙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도 않다.”

-중국과 러시아 중 어느 나라가 북한에 대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는가.

“순위로 구분할 사안이 아니다. 중요한 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놓고 중국과 러시아는 경쟁을 해선 안 된다. 실제로 양국 정상들은 북한 문제를 놓고 긴밀히 협력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끝난 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도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199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이 핵동결 합의를 이뤄내기 직전 만해도 위기감이 팽배했었다. 공개되지 않은 것이지만 그때 미국 일본 러시아는 수 차례 국방 외무장관 등이 참여하는 각료급 심포지엄을 갖고 해결책을 논의했다. 지금도 그때처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 중국 북한이 3각 블록을 형성하는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푸틴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신냉전을 원치 않는다. 만약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협력할 의사가 없다면 우리는 유럽이나 중국 인도와 얘기할 수 있다. 중국 역시 3각 블록에 찬성하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경제발전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안고 있다. 미국에 대항하는 3각 정치블록은 두 나라의 경제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러 新냉전 원치않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하듯이 중국 역시 북한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다. 러시아처럼 중국도 더 이상 이념적으로는 북한과 같지 않다. 중국은 매우 실용적인 국가로 변했다. 유일한 문제는 김 위원장은 변화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군부 등 보수 강경파가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만을 설득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그는 커다란 반대세력을 만들지 않으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변화를 이끌어 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리〓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시모니야 소장 약력

△1932년 그루지야 트빌리시 출생

△54년 모스크바 동방학연구소 졸업

△58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 경제학박사

△59년이후 IMEMO 연구원 선임연구원 부소장 역임

△9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 준회원, 97년 정회원

△97년 런던정치경제대 초빙교수

△2000년∼ IMEMO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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