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미국-'닫힌' 일본…NYT, 日 은폐전통 꼬집어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공직자의 건강 상태는 보호해야 할 개인의 프라이버시일까, 아니면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일까.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열린 사회’, 일본은 ‘닫힌 사회’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클린턴 청력이상 모두 알아▼

올 11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나선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전립선암을 앓고 있다고 전격 공개했다. 2일 공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정치인들이 와병 사실을 공개하는 게 보편화돼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분할과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문제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공표했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할 때 손을 심하게 떠는 장면이 TV에 방영돼도 궁금하게 여기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청력에 문제가 있다거나, 밥 돌 전 상원의원이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발기부전 증세로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있는 것 등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도 1994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고 공개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건강 이상을 사실대로 공개하는 것은 이를 감추다가 나중에 알려지거나 악성루머가 나돌아 타격을 입는 것보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에서 중도 탈락한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은 심장 박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제때 공개하지 않았다가 언론이 먼저 이를 제기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반면 일본은 지난달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정치권에서 후임 총리 선출문제를 막후에서 합의할 때까지 22시간 동안이나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부치총리가 병상에 누운 지 한달이 지났지만 그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발표도 없다.

▼日 국가-국민 대화 저조▼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는 2일 오부치총리의 사례 등을 들며 일본에선 전통적으로 정부나 공직자가 궂은 일을 은폐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국민이 정직하지 못한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같은 이유로 일본에선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저조하며 정부 역시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개의치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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