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유로貨 폭락…세계경제 빨간불

  • 입력 2000년 4월 30일 19시 37분


유로화(貨)의 가치는 어디까지 떨어질 것인가.

지난해 1월 1일 달러화에 맞설 세계의 기축 통화란 기대 속에 출범했던 유로. 당시 1유로의 가치는 1.1747달러. 그러나 28일 미국 뉴욕 금융시장에서 한때 사상 최저치인 0.9031달러까지 떨어졌다. 0.9107달러로 마감됐지만 출범 16개월 만에 가치는 22.5%하락했다. 이같은 유로화 가치의 속락은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위기 요인이 되고 있어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하락 추이와 악영향〓25일 유로화의 가치는 외환가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불렸던 0.93달러선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주 3번이나 최저치를 경신했다. 27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 금리를 3.5%에서 3.75%로 올렸지만 0.90달러대에서 맴돌았다. 28일에는 ECB총재이기도 한 장 클로드 트리셰 프랑스중앙은행(BOF) 총재가 은행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시 정부에 엉터리 정보를 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0.90달러대로 떨어졌다.

유로화 약세로 미국과 영국이 유로권 국가에 수출하는 제품 가격은 비싸졌다. 단기적으로 유로권 국가는 무역수지가 좋아질 것이나원유 등 수입품 물가가 올라 결국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미국 영국 등지의 투자자들은 유럽 증시에서 이익을 올려 보았자 유로를 달러로 환전하고 나면 별 이익이 없어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력한 통화’ 마르크를 써 오던 독일에서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하엘 글로스 독일 기독사회당 원내총무는 “정부가 유로는 마르크만큼 강한 화폐가 될 것이라고 했던 말은 거짓이 됐다”면서 “유로가 모든 독일인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초 유로에 대한 유로권 국민 지지도는 64%였으나 올해 초에는 60%로 낮아졌다.

▽하락의 원인〓국제 금융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활황에 따라 유로화가 달러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해 6월 유로가 1.02달러까지 떨어지자 국제 펀드 매니저들은 곧 회복될 것으로 보고 유로를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미국이 신경제의 영향으로 지속성장을 하자 미국에 투자하려는 이들이 늘어 달러 수요는 늘어갔고 유로화 가치는 떨어졌다. 이후 국제 펀드 매니저들은 유로 가치가 조금만 회복돼도 유로를 즉시 팔아 치우고 있어 유로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통화동맹(EMU) 회원국의 재정 개혁이 부진한 것도 유로 약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주요국이 유로 도입에 따른 재정 조건을 갖추는 노력을 등한히 하고 있어 유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한 분석가는 “4월초 열린 서방 선진 7개국(G7) 회의에서 유로 가치부양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최근 시장에서 유로 매도를 부추긴 결과를 가져왔다”며 “유로 가치 하락은 이제 유럽중앙은행이 아니라 G7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전망과 대책〓프랑스 파리바 은행은 0.9000달러선까지 하락할 것이며 유럽중앙은행의 금리인상도 하락 추세를 꺾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외환 운용 전략가 제인 폴리는 3개월 내에 0.8800 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에 비해 훨씬 유연한 미국 노동시장의 특성이 인플레이션과 임금 상승, 달러 가치 하락 압력을 완화시키고 있어 달러 강세는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유로 약세가 곧 반전될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독일의 외환 분석가 우베 앙겐트 등은 유로권 국가의 금융 개혁 의지가 약하고 개혁 속도가 느려 유로가 약세를 면치 못해 왔지만 독일 등에서는 이미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유로권 국가의 올해 2월 산업생산지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5.5% 오르는 등 활황세여서 곧 유로화 가치는 회복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독일 도이체방크 수석 외환 분석가 노버트 월터는 유럽의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유로가 0.9000달러선 이하로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개입, 보유중인 2500억달러를 방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기태기자·파리〓김세원특파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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