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파탄 러시아 「핵관리체계」 허술

  • 입력 1998년 10월 16일 07시 15분


러시아 핵무기에 대한 안전문제가 세계안보를 위협하는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경제위기 심화에 따른 러시아군의 급격한 기강해이와 핵과학자들의 연구소 이탈로 핵물질과 제조기술은 물론 핵무기까지 핵을 보유하기 위해 애쓰는 호전적인국가와 테러단체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최근 “경제위기로 러시아가 군인들에게 급료를 지불하지 못하면서 러시아군의 핵무기 통제력이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며 우발적 핵전 발발 가능성을 우려했다. 러시아 일간 시보드냐의 군사평론가 파벨 펠겐하우어는 “군인들의 생활조건이 위험상황에 빠지면서 핵무기를 포함한 군의 통제라인이 많이 느슨해졌다”고 밝혔다.

볼가강 부근 사라토프의 최첨단 대륙간 탄도미사일부대인 타만스카야사단의 블라디미르 대령은 “4월부터 월급을 전혀 받지못해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렵다”며 경제위기가 전략미사일부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중부 러시아의 한 전차부대에서는 소령이 월급 지불을 요구하며 탱크를 몰고 나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군인들에 대한 통제가 와해된 상태이기 때문에 핵무기나 핵물질에 대한 통제가 계속 적정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핵무기 등이 도난 또는 밀매될 가능성이 있으며 사고로 인한 핵폭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급료를 받지 못하는 많은 러시아 군인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군수품이나 무기 장비들을 빼내 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 핵과학자들의 불만도 통제불능상태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30일 25개 도시의 핵연구소에서 모스크바로 모인 수백명의 핵과학자는 경제난에 항의하며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96년에는 원폭과 수폭을 제조 해온 러시아 핵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네차이 소장이 3천여명의 연구원이 수개월째 급료를 받지못한 것을 비관해 자살하기도 했다.

미국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란 이름의 핵전쟁방지단체는 “냉전의 종식은 핵전 위협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위협이 달라졌을 뿐”이라며 “현 러시아상황을 방치할 경우 인류 최대의 핵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칫하면 인류 전체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러시아의 위기는 경제난이 회복되지 않는데다 최근에는 옐친 대통령이 병에 시달리며 국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육지에 배치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 핵잠수함과 폭격기 등에 약 4만개의 핵탄두를 배치하고 있다. 핵미사일은 유사시 8분 내에 발사되도록 조작돼 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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