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경제誌 『추락하는 히타치, 일본경제의 축소판』

  • 입력 1998년 10월 12일 19시 44분


‘히타치는 추락하는 일본경제의 축소판.’

한해 매출액 6백90억달러의 일본 전자업계 ‘거인’ 히타치가 휘청거리고 있다. 49년이후 한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던 최고의 ‘블루칩’ 기업이 올해에는 약 1천억엔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손톱만한 반도체에서 원전(原電) 설비까지 못만드는 게 없는 제품 라인업과 1조2천억엔이라는 막강한 자금력, 그러나 기존 경영 방식에 대한 자부심 섞인 고수….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히타치가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 경제의 장점과 약점을 고스란히 닮았다고 지적했다.

도시바의 1.5배, 미쓰비시의 두 배 규모로 일본 전자업계에서도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히타치의 부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정보통신 시장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

지난 해까지 일본내 16메가D램 반도체의 최대 생산업체이던 히타치는 올초 전세계 반도체 시장이 64메가D램 위주로 재편되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64메가D램 체제로 전환했지만 이미 가격은 바닥으로 떨어진 후.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도 마찬가지. 히타치의 LCD는 해상도를 비롯, 각종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공급과잉이 닥쳐도 생산비용을 줄일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더욱 큰 문제는 어려움이 누적되고 있는데도 기존의 경영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가나이 쓰토무 회장은 7만1천여명에 달하는 종업원 가운데 4천명을 줄이겠다는 고용 조정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본사를 제외하고 1천여개에 이르는 자회사의 잉여인력만 적당히 정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신 고용’이라는 일본 고유의 경영 원칙이 그대로 배어있는 것.

이코노미스트는 “히타치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뿜던 시절의 ‘전문’ 노동자를 분기마다 신제품이 쏟아지는 디지털기기 라인에 그대로 투입할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히타치가 ‘재기’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위기가 아시아 전체로 퍼졌던 것처럼 히타치의 부진이 일본내 전자산업 전체로 확산될 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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