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초기 대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질 때만해도 외국언론들은 「좋은 사진거리」 정도로 취급하는 등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회사원을 비롯한 중산층의 태도가 변해가자 외국언론은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이 시위중인 학생들에게 음료수를 사주고 빌딩위에서 꽃다발을 던지는 현상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전에는 이런 류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또다른 형태의 「민중의 힘」이다』고 보도했다. 외국언론들은 대체로 6월항쟁이 단순한 학생운동이 아니라 중산층의 민주화 욕구가 터져나온 것으로 결론 내렸다.
6월항쟁은 당시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던 동남아국가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측면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6월항쟁 1년 뒤인 88년 6월 미얀마에서는 군정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또 89년 4월에는 중국 천안문광장에서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연세대 柳錫春(유석춘·사회학)교수는 『필리핀 민주화운동에 이어 일어난 6월항쟁은 80년대말과 90년대에 걸쳐 동남아지역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한 권위주의 체제 붕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