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뮤지컬「미녀와 야수」,만화영화 뺨치는 환상무대

  • 입력 1997년 3월 25일 08시 37분


[동경〓김순덕 기자] 도쿄의 아카사카(赤坂)지하철역의 뮤지컬극장쪽 출구는 요즘 여자들이 긴 줄로 늘어서 있다. 일본 극단 사계(四季)의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보기위해서다. 공연 30분전부터 늘어선 사람들은 99%가 여성이다. 그것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중년부인, 할머니까지 다채롭다. 남성관객은 애인에게 붙잡혀 온 몇명 뿐,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브로드웨이의 디즈니프로덕션이 제작한 작품을 고스란히 일본어로 옮긴 이 뮤지컬의 총제작비는 30억엔(2백34억원). 도쿄에서 95년11월말부터 공연된 이래 지난 23일까지 4백99회 59만명, 오사카에서도 4백80회 49만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로버트 제스 로스가 감독하고 앨런 멘켄이 작곡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을 아사리 게이타(극단 사계 대표)가 제작 연출한 이 작품이 그토록 여성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밀은 바로 「만화영화와 똑같다」는 점. 막이 열리면 귀에 익은 음악과 함께 푸른 햇살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나뭇잎이 그려진 작화가 나타난다. 디즈니 만화영화의 도입부와 같다. 음악과 무대미술은 물론이요, 마법에 걸린 시계하인과 촛불하인, 주전자아주머니의 분장에서부터 기괴하기 이를데 없던 야수의 성이 야수가 사랑에 빠짐에 따라 별이 반짝이는 사랑의 장소가 되는 것 역시 만화영화와 똑같아 『달리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 편했겠다』싶을 정도다. 만화영화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미녀가 배고플 때 식기와 요리들이 총출동해서 춤추는 장면 뿐. 접시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불빛이 번쩍거리는 것이 밤무대의 춤을 연상케 한다. 여성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현실로 일어날 수 있다는 대리만족 때문이다. 얼굴만 예쁘면 돈많은 왕자가 나타나 단박에 구원해줄것 같은 행복감에 젖는다. 게다가 사냥만 잘하고 남성우위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개스통(미녀를 따라다니던 남자)이 산업사회 남성의 전형이었다면 야수는 서재 가득 책을 지닌채 섬세함과 여성을 존중하는 마음까지 갖춘 정보화사회에 걸맞은 남성이다. 이때문에 「미녀와 야수」는 나이든 여성들을 동화속으로 퇴행시킨다는 비판과 함께 그래도 각박한 현실에 동화를 펼쳐준다는 칭송을 동시에 얻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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