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밤낮 안 가리는 ‘약물 운전’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8일 23시 18분


‘젊은 운전자가 앉은 비틀거리는 외제차는 무조건 피해라.’ 마약 등 약물 운전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빈발하자 운전자 사이에서 이런 방어 운전 수칙이 회자된다. 특히 서울 강남에선 대낮에 약물에 취한 운전자들이 심심찮게 적발되고 있다. 마약 접근이 쉬운 유흥업소,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는 성형외과 등이 밀집해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된 사례는 237건으로 2020년에 비해 약 4.4배 늘었다.

▷약물 운전의 위험성이 공론화된 계기는 2023년 8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길을 걷던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이다. 30대 남성 운전자는 사고를 낸 직후 태연히 도주해 공분을 샀는데 운전 당시 케타민에 취한 상태였다. 한 달 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는 주차 시비 끝에 “칼침 맞아봤냐”며 흉기를 휘두른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붙잡혔다. 그 역시 필로폰, 엑스터시 등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다. 알고 보니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 운전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수익을 공유하던 사이였다.

▷최근엔 마약뿐 아니라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에 따른 약물 운전도 심각하다. 지난달 30대 여성이 몰던 포르쉐가 반포대교에서 추락해 한강 둔치로 떨어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포르쉐 안에서는 프로포폴 빈 병과 주사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프로포폴은 의사 처방 없이 구할 수 없고 외부로 반출할 수도 없다. 불법 유통이 만연했다는 의심이 든다.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 무단 투약 및 유통으로 검거된 인원은 총 1089명이다. 3년 전에 비해 3.4배 늘었다. 지난달에는 서울 서초구 일대에서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3km가량 운행하던 벤츠 운전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운전자는 손목에 주사기 바늘을 꽂은 채 잠들어 있었다.

▷정상적으로 의사 처방을 받았더라도 방심할 순 없다. 공황장애 치료제인 벤조디아제핀 계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계열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인지, 행동 반응을 느리게 한다. 지난달 압구정역 인근에서 50대 남성이 차량 3대를 잇달아 들이받아 4명이 다쳤다. 그는 항불안제를 복용했다고 했다. 영국과 독일은 향정신성의약품 복용 후 24시간, 호주는 12시간 운전을 금지하지만 우리는 아직 뚜렷한 기준이 없다.

▷술자리가 파한 뒤 주로 밤에 일어나는 음주 운전과 달리 약물 운전은 도로가 붐비고 행인이 많은 낮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 위험이 더 치명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4월부터 음주 운전만큼 처벌이 강화된다. 약물 운전은 마약류 투약 후 2차 범죄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마약, 의료용 마약의 불법 유통부터 뿌리 뽑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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