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만 수천곳인데…일일이 협상해야하나” 기업 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4일 20시 34분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
개별교섭 허용…교섭창구 단일화 무력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개정 노동법 하위 법령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4. 서울=뉴시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개정 노동법 하위 법령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4. 서울=뉴시스
고용노동부는 24일 브리핑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의 틀 내에서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밝혔다. 큰 틀은 흔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경영계 관계자는 “2010년 노조법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사업장 혼란을 막기 위해 교섭창구만은 단일화하기로 한 뒤 15년째 정착된 구조를 통째로 흔드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부는 내년 3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에 앞서 노사 교섭절차에 관한 지침, 매뉴얼과 사용자성 판단기준 등을 마련해 연내 발표한다.

● 노동위가 하청 노조 교섭단위 분리-통합 결정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한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이면 대표 노조를 정해 교섭해야 한다.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교섭창구 단일화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는 이날 “고용노동부가 진정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려면 창구 단일화를 강제하지 말고, 자율교섭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예외규정을 활용해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그동안 단일 사업장의 복수 노조는 근로조건이 현저히 다를 때 등 극히 예외적인 사례만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노동부는 모든 하청 노조가 따로 원청 사용자와 교섭하거나 하청 노조를 몇 개씩 묶어 교섭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청 노조 사이의 갈등까지 파악해 몇 개씩 묶어 교섭단위를 만들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노동위원회가 맡는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건설, 조선 등 주요 업계의 하청 구조는 복잡하고 다양하다”며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하청 노조의 창구를 하나로 단일화 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개정 노동법 하위 법령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4. 서울=뉴시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개정 노동법 하위 법령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4. 서울=뉴시스
사용자성 인정 범위도 여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용자성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를 말한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근로조건법상 ‘근로자’의 판단 기준은 8가지다. 반면 사용자에 대해선 그 기준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사용자성 판단 지원 위원회’(가칭)에 대해서도 경영계 시각은 회의적이다.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는 “노동위 결정에 대해 노사 모두 동의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무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양측이 따를지는 의문”이라며 “오히려 노사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고 했다.

● “노조 수천 개와 교섭해야 하는 상황 발생할 수도”

기업들은 얼마나 많은 하청 노조와 매년 어느 정도나 교섭해야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수천개의 하청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사내 하청과 사외 하청에다 직무 별로도 생산, 사무직 등 교섭단위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수천 개에 달한다. 원청 사용자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분리해서 교섭해야 할지 모호하다.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 현장 사무소를 두고 다양한 하청업체와 일하는 건설업체들은 혼란이 더 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전국에 현장이 100개 정도 있으면 대략 30개 하청업체와 거래한다고 해도 관련 하청 노조가 최소 3000개”라며 “아파트 건설현장은 2, 3년 정도면 프로젝트를 종료한다. 현실적으로 노무 관리가 매우 어렵고 사용자성 판단에 대한 혼란도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노사 현장의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그때마다 교섭단위 분리와 병합, 사용자성 판단이 반복되면 현장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시행령만으로 새로운 노사 교섭 제도의 작동 방식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노동부가 지침, 매뉴얼 등으로 제도를 더 구체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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