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미는 잠수함 원자로를 돌릴 핵 연료 조달 방안을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한미가 14일 발표한 팩트시트엔 한국이 평화적 핵 이용을 위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한국은 국방비를 GDP의 3.5%로 증액하고 2030년까지 약 36조 원어치 미국 군사 장비를 구매하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 현대화의 밑그림을 그린 첫 합의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동의 없인 저농도 우라늄 농축도, 폐연료봉 재처리도 금지한 한미 원자력협정은 원전 산업 발전의 큰 족쇄였다. 북핵 위협이 날로 커지는데 핵잠 개발 여건을 갖추고도 만들 권한이 없는 처지는 대북 억지력의 큰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핵잠만 해도 대통령실은 국내 건조가 전제라고 했지만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핵잠 지원은 미국이 호주에 약속한 기술 이전을 위한 특별법 처리에만 2년여 걸렸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다. 농축·재처리는 핵 비확산 문제에 민감한 미 원자력 부처들의 우려로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실제 권한을 얻기 위한 실무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더 많은 동맹 역할을 요구하는 청구서를 내밀 수도 있다.
당장 팩트시트엔 ‘한미 양국이 모든 역내 위협에 대한 미국의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라는 대목이 들어갔다.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인도태평양 전체로 넓히고 그 역할을 중국 군사력 억제로 확대하려는 신호탄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의지와 관계 없이 미중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주한미군에 48조 원 규모의 포괄적 지원을 약속하고, 중국이 반발해 온 대만해협 문제가 포함된 것도 우리가 치를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동맹 현대화 협상의 본게임은 이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성패는 자강력을 높이는 동시에 중국과 척지지 않으려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에 한국을 동참시키려는 미국이 어디서 균형점을 찾을지에 달렸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피하면서도 동맹의 역할 조정이 우리 국익을 해치는 데로 나아가지 않도록 모든 외교 역량을 쏟아부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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