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미드-일드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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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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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힘 빼고, 사랑은 퇴근 후에”… 한국 수사드라마, CSI서 배우자

‘싸인’ 19회, 윤지훈(왼쪽)을 그윽하게 쳐
다보며 때 아닌 여유를 부리는 고다경.
SBS TV 화면 촬영
‘싸인’ 19회, 윤지훈(왼쪽)을 그윽하게 쳐 다보며 때 아닌 여유를 부리는 고다경. SBS TV 화면 촬영
한국 드라마의 약한 고리였던 수사드라마에도 봄은 올까. SBS ‘싸인’은 비록 방송사고라는 대반전으로 막을 내렸지만 최고 시청률 25.5%(AGB닐슨미디어)로 ‘한드 수사물’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KBS 2TV는 7일부터 형사물 ‘강력반’을 내보내면서 수사드라마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제작자들이 블루오션을 노리고 새로운 수사물 제작에 잇따라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싸인’과 ‘강력반’은 한드 특유의 한계도 노출했다. ‘싸인’이 싹을 틔운 한드 수사물이 만개하려면 장르 드라마의 왕국인 미국과 일본의 수사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미드의 충고: 과도한 비장미 이제 그만

‘싸인’의 부검 장면에서는 줄곧 현악기가 대거 동원된 오케스트라 연주에 강렬한 전자기타 음이 귓가를 때렸다. 부검대에 오른 시체가 벌떡 일어나 헤드뱅잉이라도 해야 할 듯한 분위기다.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은 정의의 주인공답게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목청껏 ‘과학적 진실’을 외치고, 그의 적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것이… 권력이야” “자넨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거야” 같은 뻔하디뻔한 대사를 던져 시청자들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강력반’에도 ‘물불 안 가리는 형사’라는 상투적인 캐릭터 박세혁(송일국)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몇 년 전 경찰이 추격하던 범인이 모는 차에 치여 어린 딸이 죽었다는 과거까지 지닌, 비장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다.

미국 수사물의 대표주자 ‘CSI’는 다르다. 법의학자들은 침착하다 못해 수도승처럼 보인다. 과학적 진실을 큰 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다. 철두철미한 부검과 실험과정은 그들이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전문가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싸인’류의 비장미는 살인이라는 극적 사건을 다루는 수사물의 특성상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하지만 반복되면 효과는 반감되다 못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마련. ‘지속가능한’ 수사드라마를 위해 미드의 쿨한 건조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일드의 충고: 국과수에선 부검, 경찰서에선 수사를

“미드는 의사가 병원에서 진료하고, 일드는 의사가 병원에서 교훈을 주고, 한드는 의사가 병원에서 연애한다.” 얼마 전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한미일 3국 드라마의 특성을 절묘하게 간파해낸 지적인데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사에만 몰두하던 윤지훈과 후배 법의학자 고다경(김아중). 하지만 긴장감이 한껏 고조됐던 드라마 막바지에 뜬금없는 ‘러브 모드’가 등장해 드라마의 김을 확 빼버렸다. 고다경이 윤지훈을 집에 불러다 재운 뒤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는 장면이 늘어지도록 화면을 채운 것이다. 고다경으로서는 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연쇄살인범이 죽은 직후였고, 동생의 목숨을 포기하고서라도 잡고 싶다는 가수 서윤형의 살인범 강서연(황선희)이 버젓이 활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일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남녀 사이를 떼어놓는다. 역대 일드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히어로’(2001년)는 일본 최고 스타이자 늘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는 선남선녀 기무라 다쿠야와 마쓰 다카코가 출연한 수사물이다. 은근슬쩍 연애감정이 드러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시청자들의 애만 태운다. 그 대신 드라마는 주인공 구리우 검사의 독특한 캐릭터와 사건 해결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요즘 방송 중인 ‘컨트롤-범죄심리수사’도 마찬가지다. ‘곁눈질’ 없이 본업에 충실한 캐릭터들은 일을 팽개친 채 사랑놀음에 빠진 인물들보다 흡인력이 강하다. 일드는 충고한다. “국과수에서는 부검, 경찰서에서는 수사를 하라!”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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