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MBC 드라마 ‘짝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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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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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소재 ‘신분 상승’… 그래도 TV 앞으로, 왜?

《달빛이 괴괴한 어느 날 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스승을 만난 거지 아이가 마을 뒷산으로 뛰어올라 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친다. “두고 보아라, 나는 글을 배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참선비가 될 것이다!” MBC 드라마 ‘짝패’ 3회, 거지 움막에서 거지패로 자란 천둥(노영학)은 마을 훈장 성 초시(강신일)에게 글을 배우면서 원대한 포부를 갖는다. 여기서 질문. 이 장면에서 진한 감동을 받았(또는 받겠)는가?》

찬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글공부에 집착
하는 천둥. 그 집착은 신분 상승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MBC 제공
찬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글공부에 집착 하는 천둥. 그 집착은 신분 상승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MBC 제공
그랬다면 당신은 1970년대 감수성의 소유자다. 2000년대 감수성이라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고작 글 배우는 걸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고?”라며.

이 드라마는 경쟁작인 KBS2의 ‘드림하이’가 끝나자마자 시청률 20%를 넘기며(수도권·AGB닐슨미디어 기준) 월화드라마 시청률 순위 1위로 뛰어올랐다. 사실 드라마로서 새로울 것은 없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부터 그렇다. 운명이 엇갈린 두 남자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도 지난해 화제작인 KBS2 ‘추노’를 떠올리게 한다.

그 대신 ‘짝패’는 제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촘촘히 펼쳐놓는다. 우여곡절 끝에 갓난쟁이 시절부터 거지가 된 주인공 천둥은 악착같이 글을 배운다. 여주인공 동녀(전세연)는 본디 성 초시의 딸인데 아버지가 민란 주모자라는 누명을 쓰고 죽자 기생집에 팔려갈 위기에 처한다. 미드나 일드에서는 이렇게 등장인물의 신분이 널뛰는 설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 ‘신분 상승의 욕망’은 한국 드라마의 영원한 클리셰다. ‘짝패’는 이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21세기 한국 사회를 닮았다. 천둥의 인생역정부터 한국의 현대사를 압축해놓은 듯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 세대에 신문에 등장했던 누군가의 성공담과 비슷하다. 찬물로 주린 배를 채울 정도로 가난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서당에서 흘러나오는 글 읽는 소리를 훔쳐 들으며 글을 배운다. “거지 주제에 무슨 공부냐”며 타박하는 사람들을 피해 귀신이 나온다는 산속 상엿집에서 몰래 글을 읽는다.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 첫머리를 무심코 모래바닥에 끼적일 정도로 실력을 쌓는데 글을 배우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로 세상을 바꾸려던 천둥의 꿈은 스승인 성 초시가 누명을 쓰고 죽으면서 좌절된다. 천둥은 깨닫는다. 글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걸.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돈으로 바뀌고,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신분 상승의 수단이 ‘학벌’에서 ‘재력’으로 옮겨간 현대 사회와 만난다.

성 초시가 죽은 뒤 갖바치 집에 들어가 가죽신을 팔면서 상인의 자질을 보이기 시작한 천둥은 어른이 된 후(천정명) 장사꾼으로 변신해 상단의 우두머리 행수가 된다. 어른이 된 동녀(한지혜) 역시 장사를 시작하고 후에 여각(旅閣)의 주인이 된다. 경영대-사회과학대-인문대 순으로 대학 학과 선호도 순위가 매겨지는, ‘어느 대학 나왔느냐’보다 ‘연봉 얼마 받느냐’가 더 중요해진 요즘 세상과 너무나도 비슷한 설정이다.

재력의 힘에 눈뜨기 시작한 주인공들이 앞으로 분출해낼 신분 상승, 혹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을까. 궁금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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