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일드의 ‘한드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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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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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 신데렐라… 기억상실증…

《킬힐을 신고 취재 현장을 누비는 ‘차도녀’. 하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건어물녀’로 변신한다. 헐렁한 티셔츠 차림에 오징어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면서 드라마 보는 게 낙이다. 드라마를 볼 땐 꼭 고양이를 옆구리에 끼고 본다. 고3 때도, 경찰서 수습기자 시절에도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영국까지 드라마란 드라마는 거의 다 챙겨봤다. 그 결과 다크서클과 안구건조증에 시달리고 있다. “안 본 드라마가 없다”고 자신하는 이새샘 기자가 격주로 드라마 칼럼 ‘고양이 끼고 드라마’를 연재한다.》

지난달 일본 TBS에서 시 작한 드라마 ‘겨울의 벚 꽃’ 홈페이지 일부(오른쪽). 목도리를 한 채 껴 안고 있는 남녀 주인공 모습이 2002년 ‘겨울연 가’(왼쪽)의 배용준과 최 지우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TBS ‘겨울의 벚꽃’ 홈 페이지 촬영
지난달 일본 TBS에서 시 작한 드라마 ‘겨울의 벚 꽃’ 홈페이지 일부(오른쪽). 목도리를 한 채 껴 안고 있는 남녀 주인공 모습이 2002년 ‘겨울연 가’(왼쪽)의 배용준과 최 지우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TBS ‘겨울의 벚꽃’ 홈 페이지 촬영
잘 컸구나, 한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일드)의 오랜 팬이라면 요즘 이렇게 느낄 만하다. 한때 ‘일드 따라한다’며 표절 논란에 휩싸이곤 했던 한국 드라마(한드)가 이젠 일드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고부갈등을 겪는 아내,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신데렐라…. 한드의 단골 소재들이 최근 일드로 줄줄이 출장 중이다. 그야말로 ‘일드 안에 한국 있다’.

지난달 시작한 일본 TBS의 ‘겨울의 벚꽃’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다. 제목부터 수상하다 했는데 프로듀서는 솔직했다. “‘겨울 소나타’(‘겨울연가’의 일본 제목)에 지지 않는 러브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새하얗게 눈 덮인 풍경, 남녀 주인공이 목도리를 두르고 등장하는 포스터까지 일본에서 대박을 터뜨린 ‘겨울연가’(2002년)와 똑같다. 여주인공은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기억을 되찾지만 이번엔 뇌종양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져 남자 주인공과 슬픈 사랑을 한다. ‘겨울연가’에서는 남자 주인공 이민형(배용준)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나중에는 시력을 잃으면서 여주인공 정유진(최지우)과 애틋한 사랑을 했다. 이래도 모를까봐 드라마 초반에는 아예 최지우가 지나가는 여인으로 깜짝 출연했다.

후지TV가 지난달부터 방송 중인 ‘외교관 구로다 고사쿠’는 ‘아이리스’(2009년)와 비슷하다. 해외 로케이션으로 이목을 끌었던 ‘아이리스’처럼 1회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찍었다. 주인공 고사쿠는 직업이 외교관이지만 하는 일은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스파이다. 딱 국가안전국(NSS) 요원 김현준(이병헌)이다. 이를 인증이라도 하듯 이병헌이 드라마 초반 주인공을 돕는 비밀요원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후지TV가 지난해 5∼7월 내보낸 ‘달의 연인’은 줄거리만 보면 ‘차도남’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한드식 신데렐라 드라마다. 인테리어업체 사장인 남자 주인공이 첫눈에 반한 여공을 회사 모델로 발탁해 신데렐라로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다.

한드를 벤치마킹한 드라마들은 일드 중에서도 ‘힘 준’ 드라마에 속한다. ‘겨울의 벚꽃’의 주인공은 일본 국민 아이돌 그룹 ‘SMAP’의 구사나기 쓰요시가 맡았다. ‘외교관…’의 주연은 ‘춤추는 대수사선’으로 일본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오다 유지다.

‘달의 연인’은 시청률 제조기로 불리는 일본 최고 스타이자 SMAP의 멤버인 기무라 다쿠야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아직 미지근하다.

‘달의 연인’은 일드의 황금시간대로 꼽히는 월요일 오후 9시에 방영된 ‘게쓰쿠(月9) 드라마’임에도 시청률은 10% 중반에 머물렀다. ‘겨울의 벚꽃’이나 ‘외교관…’도 첫 회 시청률이 10% 중반이었고 그 뒤론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한드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없어서일까. 한드가 티오피라면 한드를 벤치마킹한 일드는 그냥 커피?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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