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석호/KBS,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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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 대한민국, 화합의 시대로.”

노 대통령의 취임연설 제목이 아니다. 대한민국 언론을 대표하는 KBS의 올해 방송지표다. 그러나 KBS가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태와 프로그램들은 그런 지표가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믿게 만들고 있다.

송두율 교수 관련 특집 프로그램으로 KBS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자 PD들은 오히려 모든 프로그램 속에서 정치개혁과 신문개혁 여론을 확산하는 데에 배전의 노력을 기하겠다고 다짐하더니 급기야 동아 조선 중앙일보를 특정해서 공격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11일 밤 KBS 1TV를 통해 방송된 ‘신문,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꼬박꼬박 수신료 내는 이유▼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주요 신문을 이 땅의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는 수구 보수 권력으로 난도질했다. 주요 신문들이 최소한의 도덕성과 윤리 의식도 갖추지 못했으며 친일 행각, 군부독재와의 유착, 저질·오보 등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요, 또 이를 의도적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가 아니라 권력기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방송이 신문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KBS도 언론일진대, 이번 프로그램은 같은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도 없는 것이었다. KBS 스스로 ‘금단의 영역’을 넘었으니, 필자도 부담 없이 KBS에 묻고 싶다. “우리에게 KBS가 꼭 필요한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책임자인 PD들은 최근 성명서에서 KBS에 대한 비판이 공영방송의 존립 자체를 부인하고자 하는 거대한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KBS는 비판받을 과오가 없는가. 정권의 나팔수였다는 종래의 비판은 차치하고, 지금 KBS는 진실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국민이 꼬박꼬박 수신료를 내는 것은 광고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업방송이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영방송과 달리 오직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방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의 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영방송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더욱 높은 감시를 받아야 한다. 국민이 방황하고 갈등할 때 중심을 잃지 않도록 소리칠 수 있는 목소리를 지키기 위한 희망의 저축을 수신료를 통해 하는 것이다.

노동정책 재벌정책 대북정책 등에서 이른바 ‘수구 신문’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에 대해 전부 반대했다고 KBS의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고발’했다. 또 정부 정책을 둘러싸고 국민 여론과 주요 신문들의 논조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도 비판했다.

KBS가 정말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왜 비판적 언론이 필요한가 하는 케케묵은 설명을 하기 전에 KBS 스스로는 어떤 언론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정부의 개혁정책을 옹호하는 언론이 정도이고, 그것을 비판하는 언론은 잘못이라는 말인가.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포클랜드 섬을 둘러싸고 전쟁을 치를 때 BBC가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 편에 서서 전쟁을 옹호한 것은 어용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국론의 분열을 막고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공영방송이 져야 할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었다. 국민이 이념적으로 갈라지고 계층간 갈등을 빚고 있는 지금, KBS는 공영방송사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론 통합을 이루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정치적 중립 지켜야할 공영방송▼

스스로를 개혁 세력으로 생각하고 정치 집단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줄 모를 때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이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기관이 돼 국민을 지도하고 길들이려고 할 때 KBS는 죽어간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주인인 국영방송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국민은 희망을 접게 된다.

“KBS,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

답을 알면서도 이런 질문을 새삼 던지는 것은 공영방송 스스로의 자존심을 찾아 KBS가 소생하기를 아직은 기대하기 때문이다.

방석호 홍익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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