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기상승 <여인천하>어디까지 사실인가 ?

  • 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45분


SBS의 사극 <여인천하>(월 화 밤 9시50분)의 인기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여인천하>는 35%를 웃도는 높은 시청률로 KBS 대하사극 <태조 왕건>에 이어 시청률 2위를 지키고 있다.

이같은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원작소설인 월탄 박종화의 <여인천하> 도 출간된지 16년만에 2판 인쇄에 들어갔다.

실제 역사와 이를 ‘1차 가공’한 소설, 그리고 소설을 재가공한 드라마는 과연 어떤 점이 같고, 또 다를까.

▽따지고 보면 더 헷갈린다?〓이 드라마의 가장 큰 ‘헛점’은 주인공의 나이. 드라마와 원작소설에서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틀린 사실이다. 실제 역사에서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따라서 동생의 첩인 난정과 문정왕후의 나이 차이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난정과 문정왕후의 나이 차이를 여섯 살로 설정했다. 현재 극중 문정왕후의 나이는 18, 19세 무렵. 논리대로라면 정난정은 이제 고작 12, 13세여야 맞는다.

유동윤 작가는 “문정왕후가 왕비가 된 후부터 난정을 만날 때까지가 시기적으로 워낙 길어 이 기간을 줄이려다 보니 드라마속 나이가 뒤죽박죽 됐다”고 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이런 모순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심 끝에 주인공의 나이를 ‘몇 살’이라고 밝히는 대신 ‘문정왕후는 신유년 생이다’ ‘난정은 병인년에 태어났다’ 하는 식으로 슬쩍 넘어갔다.

▽문정왕후 vs 후궁들〓원작 소설에 비해 드라마에서는 문정왕후의 역할과 비중이 현저히 커졌다. 소설속의 문정왕후는 자신보다 나이가 10여세나 많은 노회한 후궁들의 기세에 눌려 10년 가까운 세월을 정치에 무관심한 척 지내다가 훗날 난정의 간교에 의지해 권력을 휘두르며 후궁을 제거해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역사서에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한 이후의 기록이 주로 남아있다.

그러나 드라마속 문정왕후는 소설과 달리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적인 여걸로 나와 처음부터 후궁들의 ‘군기’를 잡는다. 시청률 상승의 견인차가되고있는 문정왕후와 경빈이 벌이는 팽팽한 ‘기싸움’ 부분은 모두 허구.

극 중반부에 들어서면 가장 막강한 후궁이었던 경빈은 아들인 복성군과 함께 쫓겨나 결국 사약을 받고 죽는다. 경빈은 문정왕후의 아들인 세자를 저주하기 위해 죽은 쥐를 나무에 매단 ‘작서(灼鼠)의 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쓴 것.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영악한 난정이 ‘작서의 변’을 꾸며 경빈과 복성군을 내쫓은 뒤 다시 이를 정적(政敵)인 김안로측이 경빈을 모함하기 위해 일으킨 것으로 뒤집어 씌워 한번에 두 세력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작서의 변’이 일어난 뒤 5년후 김안로의 아들이 진범인 것이 밝혀졌다”고 기록돼 있다.

▽난정은 왕실의 핏줄이었을까?〓극적인 재미를 위해 작가는 난정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추가했다. 드라마에서 난정은 중종의 숙부인 ‘파릉군’이 소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왕실의 핏줄을 이어받은 셈. 그러나 중종반정 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3등 공신인 정윤겸 소실의 딸로 둔갑한다. 난정은 극 후반부에 이르러 을사사화 중에 비로소 친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다. 파릉군은 물론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

소설에서는 난정이 정윤겸의 소실이 낳은 딸로 돼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도 정난정은 정윤겸과 관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적혀있다.

난정이 윤원형의 소실이 되는 부분도 소설과 드라마는 상당히 다르다. 소설에서는 정윤겸이 먼저 딸을 소실로 데려가라고 제의해 난정은 하루만에 윤원형의 첩이 된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난정이 기생 수업을 받던 중 입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방을 찾은 윤원형을 유혹, 그의 소실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모두 첩인 난정이 윤원형의 정부인인 김씨를 독살한 뒤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훗날 정경부인까지 오르는 것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역사 기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윤원형이 몰락한 뒤 죽은 정부인 김씨의 어머니가 “딸이 난정에게 독살당했으니 조사해달라”는 소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독살설’을 뒷받침해 준다. 윤원형이 몰락한 후 유배지에서 자살하는 부분은 역사와 소설, 드라마가 모두 같다.

▽허구의 인물 vs 실존 인물〓왕실 쪽의 인물은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이다. 난정에게 궁안의 고급 정보를 흘려주는 기생 옥매향은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극 중반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비중이 커 지는 길상과 능금은 실제 역사에서는 물론 소설에도 전혀 없는 드라마상의 인물. 작가는 경빈 박씨가 죽은 뒤 극 후반부에 인물들간의 ‘갈등구조’가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길상과 능금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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