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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6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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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의 드라마들이 이런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롤러코스터’에 온 정신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왠 아날로그? 그러나 디지털이 워낙 빠른 변화로 생각할 겨를마저 빼앗아가는 통에 오히려 촌티와 인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 상품’이 주목받을 여지도 많다.
SBS가 22일부터 방영하는 50부작 주말 드라마 ‘덕이(토 일 밤8·50)’는 ‘아날로그 상품’의 대표적 사례다. 한 여성의 삶을 통해 한국 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4·19혁명을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랑이 몰아쳤던 1970년대까지의 현대사를 짚는다. 주연 정귀덕은 김현주가 맡았고, 전통적 어머니(고두심), 빨치산(김혜영), 부잣집의 망나니 외아들(박영규), 방앗간 주인(조형기), 미장원 주인(이혜숙)이 등장해 분위기가 드라마 ‘은실이’를 보는 듯하다. 줄거리는 빨치산의 딸로 태어난 귀덕이 같은 날 태어난 귀진과 쌍둥이로 자라면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 귀덕은 가족의 온갖 학대를 이겨내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용서와 화해라는 인간적 가치를 일궈낸다.
이미 KBS2는 지난달 25일부터 주말 드라마 ‘꼭지’로 아날로그 드라마에 시동을 걸었다. ‘꼭지’는 7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촌티 드라마. 제주 4·3항쟁에 가담한 만호(박근형), 외도로 낳은 딸(예지원), 사법고시를 통해 출세하려는 인간(이종원), 다방 마담 (박지영) 등 등장 인물들이 20세기 유형 그대로이고 극의 전개도 그다지 빠르지 않다. ‘꼭지’는 아직 시청률에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기다렸던 드라마”라는 일부 시청자의 평도 받는다.
방송가에 나온 이같은 ‘아날로그 상품’의 대표적 사례는 지난해 나온 복고 드라마 ‘은실이’와 ‘국희’, 올해의 ‘허준’. 시대극으로 빅히트 중인 ‘허준’은 옛스러움에 대한 향수나 도덕 교과서에나 나옴직한 인물상을 제시해 디지털 속도전에서 잊어버리고 있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특히 SBS의 ‘사랑의 전설’과 ‘불꽃’, KBS2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 호화 캐스팅으로 무장한 현대극들이 기대 만큼의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최근 아날로그 드라마의 인기는 더욱 뚜렷해진다.
<허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