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산 원유 의존 낮춰야” 공감해도…가격·품질 대체 쉽지 않아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31일 16시 44분


미국산 원유 운송 기간 중동의 2배 넘어
주로 경질유…국내선 중질유 수요 더 커
러시아산은 우크라전 이후 공급망 불안
캐나다 멕시코 등 수입선 다변화 시급

중동 사태로 원유 수급 불안으로 공공 부문에 대한 승용차 5부제(요일제)가 시행된 2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수성구청 주차장 입구에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18일 오후 3시부로 원유 관련 자원안보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한 바 있다. 2026.03.25 [대구=뉴시스]
중동 사태로 원유 수급 불안으로 공공 부문에 대한 승용차 5부제(요일제)가 시행된 2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수성구청 주차장 입구에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18일 오후 3시부로 원유 관련 자원안보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한 바 있다. 2026.03.25 [대구=뉴시스]
“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더 이상 원유 공급망 다변화를 외면할 수 없다.”

아시아 정치 전문가 카리슈마 바스와니 칼럼니스트가 3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말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중동산 원유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이번 이란 전쟁을 계기로 공급망 충격을 넘어 경기 침체, 에너지 안보 위기 등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이 드러나며 중동에 편중된 원유 공급망을 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행료 부과에 나서며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상황인 만큼 선제적으로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줄이는 등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美 원유 100배 도입해도 ‘탈중동’ 요원

31일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으로부터 원유 1억8491만 배럴을 들여와 네덜란드(3억2329만 배럴)에 이은 2대 수입국이었다. 네덜란드는 로테르담항을 통해 미국과 유럽간 길목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실상 단일 국가로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많이 미국산 원유를 쓰는 국가인 셈이다.

한국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산 원유를 들이기 시작했다. GS칼텍스가 2016년 11월 국내 정유사 중 처음 미국산 원유를 도입했고 이어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옛 HD현대오일뱅크)도 2017년 잇달아 수입했다. 당시 중동 산유국들이 담합해 가격 인상을 위한 인위적인 감산에 들어가자 이를 대체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된 결과다. 미국이 1975년 12월 1차 석유파동으로 원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가 2015년 12월부터 금수 조치를 해제한 영향도 컸다.

금액으로는 10년 사이 102배로 뛰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액은 2016년 1억2625만 달러에서 지난해 128억6451만 달러로 늘었다.

그럼에도 이 기간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80%대에서 지난해 70.7%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경제성이 가장 큰 이유다. 중동산 원유와 비교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의 원유를 들일 경우 운송비와 운송 기간이 배로 들기 때문이다. 중동산 원유는 한국으로 가져오는 운송 기간이 통상 20일 가량 걸리는데 미국산은 약 50일이 걸린다.

한국은 러시아 원유 수입으로 2021년 중동산 의존도가 59%까지 떨어졌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러시아 공급망이 막히며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만 최근 원유 수급난이 심화되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다시 들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필리핀은 24일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을 5년 만에 재개했다. 태국, 스리랑카, 베트남 등도 러시아산 원유 도입 협상을 진행 중이다.

●중동산 중질유 대체엔 소홀

원유 특성의 차이도 있다. 미국산 원유를 아무리 많이 수입하더라도 국내 기업들이 주로 쓰는 중동산 원유와 성질이 달라 실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원유는 점도나 황 함량 등 특성에 따라 크게 경질유와 중질유로 나뉘는데, 미국산은 주로 경질유에 치중돼 있다. 묽고 가벼운 경질유는 휘발유나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를 뽑아내는 데 쓰이고 끈적하고 무거운 중질유는 경유, 항공유 생산에 유리하다.

국내 정유사들이 이미 중질유 중심으로 생산체계를 구축한 것도 걸림돌이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할 때는 중질유, 경질유 등 재료들을 섞어서 석유제품을 생산하는데 현재 국내 정유 업계는 중질유 비중을 높여 쓰는 쪽으로 최적화돼 있다. 중동산 중질유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그동안 미국산 원유를 수입해 대체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중동산 경질유 시장”이라며 “중질유만 놓고 보면 공급망 다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 안보로 접근해 풀어가야”

결과적으로 중질유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탈중동’ 수입처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캐나다, 멕시코,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이 중질유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산유국이다. 경질유 역시 여전히 중동산 비중이 높아 미국산 등으로 대체 속도를 높여야 한다. 여기에 맞춰 국내 정유 시설의 정비 및 고도화도 병행돼야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질유라고 다 같은 중질유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원유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관세 인하 등 세제혜택과 운송비 보전 등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유인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중동 전쟁과 같은 리스크에 대응해 도입선 다변화는 필수”라며 “에너지를 국가 안보, 국가 자산으로 보고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원유 공급망#중동산 원유#중질유#미국산 원유#에너지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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