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기업 참여 JV 투자금으로 고려아연 지분 11.8% 확보 구상
영풍측 “경영권 방어용 계획” 의심… 핵심기술 유출 韓정부 승인도 변수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 및 방산기업들과 합작해 미국에 제련소 건설을 추진한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영풍 측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경영권 분쟁에 다시 불이 붙은 모양새다.
고려아연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내 전략 광물 제련소 건립 계획을 의결했다. 이사회 직후 발표된 공시에 따르면 미국 정부, 방산기업 등 투자자, 고려아연은 공동으로 합작법인(JV)인 ‘크루서블 JV’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후 이 회사를 통해 투자금을 조달해 미국 남부 테네시주 니르스타(Nyrstar)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후 ‘크루서블 메탈’이라는 제련 회사를 설립하고 2029년까지 제련소를 건설한다. 총투자금은 74억3200만 달러(약 10조9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합작법인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총 220만9716주(10.3%)를 보유한다는 구상이다. 고려아연 측은 16일 68만10주를 소각할 예정이라 합작법인의 고려아연 지분은 이보다 더 높은 11.8%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는 8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발표한 미국과의 전략광물 협력 방안을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중국이 앞서 10월 희토류 등 전략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고려아연과 전략광물 현지 생산을 위한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고려아연이 현재 영풍과 극심한 경영권 다툼 중에 있다는 점이다. 최 회장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영풍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연합은 이 같은 투자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의 합작법인이 고려아연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가 되면 경영권 분쟁 국면이 고려아연에 유리한 쪽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의 약 47%를 소유한 최대 주주다. 최 회장은 우호지분을 합쳐도 33%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지분이 유지될 경우 내년 3월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끝나는 고려아연 사외이사 6석 중 3석을 영풍의 우호 인사로 채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고려아연에 10%의 우호지분이 새로 생기면 양측의 지분은 엇비슷한 수준이 된다.
영풍 측은 이번 투자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 유치’라고 의심한다. 영풍 측은 “미국 투자가 필요하다면 제련소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면 되지, 굳이 미국 합작법인이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며 “지분을 미국에 내주고 리스크를 짊어지는 행태는 아연 주권 포기이자 기존 주주에 대한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맞서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전략적 자원 동맹’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도 내세울 수 있다.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에는 정부의 승인 여부도 변수다. 향후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에 국가 핵심 기술이 수출될 경우 기술 유출 여부에 대해 산업통상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국가 핵심 기술은 해외에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 및 국민 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로 정부가 특별 관리한다. 현재 고려아연이 보유한 고순도 아연 제련 기술인 헤마타이트 공정 기술과 이차전지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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