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겨울… 투자유치 1년새 3조→8000억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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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맞은 스타트업]
돈줄 막혀 감원… 폐업 기로에

설립 초기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던 국내 한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 A사는 최근 직원 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신규 서비스 기획과 마케팅 담당 직원에게는 위로금을 주며 사직을 권고했다.

A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올해 계획과 달리 투자 유치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콘텐츠 이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었지만 매출이 나지 않자 투자를 검토하던 벤처투자사(VC)들은 ‘돈이 안 벌리면 투자가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다.

A사 대표는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릴 때는 VC들이 ‘아직 비즈니스모델(BM)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이용자를 모으는 데 포커스를 맞춰라’라고 조언했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새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적자가 나더라도 투자를 잘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안이했는지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으로 벤처·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위축되는 ‘겨울’이 찾아올 것이란 우려가 올 하반기(7∼12월) 들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7월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전체 투자금은 836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3조659억 원) 대비 72.7% 감소했다. 올해 8월 투자금도 862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1조668억 원) 대비 19.1% 줄었다.

투자 시장이 침체되면서 투자를 못 받아 문 닫는 신생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장성을 인정받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스타트업이 폐업 기로에 놓이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회원 75만 스타트업 자금난에 흔들… 콘텐츠社 직원 절반 감원도


투자 얼어붙은 스타트업
‘현금 확보’ 사무실 확장계획 접고, 마케팅 인력 뽑는 대신 외주 줘
스타트업 간 인수합병 활발해져… “옥석 가릴 수 있는 시기” 분석



2013년 설립된 모바일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유저해빗은 국내 유수의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최근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난을 겪다가 8월 폐업했다. 이 회사 정현종 대표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10년 차 스타트업이지만 경영 악화로 폐업하게 됐다. 성장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빚을 지면서 버티는 마지막까지도 결국 BEP(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창업 3∼7년 차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넘고도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한 것이다.

식품 배송 서비스로 85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1∼8월 283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을 보였던 국내 한 스타트업도 자금난으로 한때 서비스를 중단해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스타트업들은 각종 비용 절감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 스타트업들, 사무실 줄이고 채용도 중단
서울 강남에 위치한 B스타트업은 최근 좀 더 입지가 좋고 넓은 사무실을 구해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투자 시장이 당분간 침체될 것으로 보이자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고심 끝에 해당 사무실에 입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다른 스타트업에 ‘우리 사무실을 인수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C스타트업도 투자 유치가 3개월째 늦춰지자 사무실 이전 계획을 접고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독려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를 유치하더라도 사무실 이전은 우선순위에서 아예 배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투자 침체를 예상해 선제적으로 투자를 받기도 한다. D스타트업은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최대한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금이 고갈되기 직전에 투자를 받는 기존 관행과 다른 행보다. 이 회사 대표는 “처음에는 기업 가치를 덜 인정받은 것 같아 아쉬웠지만 지금은 판단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자를 유치했다 하더라도 직원 채용에 소극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직원 7명 규모의 E스타트업은 최근 프리A(pre-A) 투자를 유치했지만 당분간 직원 채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했던 마케팅 인력은 외주화하고, 일부 서비스는 자동화했다. 이 회사의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품 강화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스타트업 간 M&A 활발…“본격적인 옥석 가리기”
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스타트업 간 M&A도 활발해지고 있다. 자금 여유가 있는 스타트업은 몸값이 하락한 스타트업을 인수해 사업을 확대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고, 신규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스타트업들은 파산을 면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올해 하반기 핀테크 기업 ‘핀다’는 빅데이터 상권분석 스타트업 ‘오픈업’을,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엑스와이지’는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코봇’을, 택스 테크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는 아르바이트 급여 관리 앱 운영사 ‘두들팩토리’를 인수하는 등 다양한 M&A가 이뤄졌다.

벤처투자 업계에는 스타트업의 옥석을 가리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핵심 인력이 이탈하거나, 일정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으면 지표가 유지되지 않는 스타트업에 대해 투자를 꺼리고 있다. 한 VC 심사역은 “그동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장성과 가능성이 보이면 투자를 하기도 했는데, 겨울이 언제 끝날지 확신이 없다 보니 비즈니스 모델, 수익모델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 이익 창출 구조를 잘 갖춘 곳을 중심으로 투자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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