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창호]해운산업 재건 노력이 무산될 위기를 우려 한다

양창호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입력 2021-06-21 03:00수정 2021-06-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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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호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 정부는 해운업계와 함께 해운재건 5개년계획을 국정과제로 추진하여 왔다. 그 결과 해운업계는 외항해운 수송능력을 확대하여 왔고 장기불황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최근 수출 호황과 더불어 해상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선박이 부족해지고 해상운임이 상승하여 우리나라 수출입화주들의 해상운송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HMM 등 국적선사들은 화주들의 선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임시선박 투입 등 수출입 화물을 차질 없게 수송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동남아항로 컨테이너 해상운송서비스 업체들에게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였다고 하면서 대부분 중소규모의 선사인 국적선사 12개 업체들에 대해, 지난 15년간의 동남아항로 매출의 8.5~10%에 해당되는 최대 5000억~6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각 업체에 통보했다. 중소 해운사들에게 수천 억 원의 과징금은 그야말로 선사들의 존폐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대로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경영체질이 허약한 중소 해운사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한국 해운 산업은 국적선사인 한진해운 파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보고서는 동남아 항로 취항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를 부당한 공동행위로 규정하고 경쟁을 저해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다며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동남아 취항 선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심하는 공동행위로 인한 부당이득은 전혀 취할 수 없었고, 겨우 경영상 어려움에서 막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추진은 해운산업의 위기로 이어질 게 뻔하다. 해운산업계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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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심사보고서는 외항 정기선 해상운송업의 ‘운임 공동행위’를 가격 담합이라는 공정거래법 시각에서 보고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으로 정기선 해상운송업의 ‘운임 공동행위, 협약’은 경쟁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즉, 해운법에서 컨테이너 선사 간 운임 공동행위는 허용되어 있다. 그러나 공정위 심사보고서에서는 동남아 컨테이너선사간 운임 공동행위가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벗어났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운임담합을 한 부당한 공동행위라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근거로 ‘공동행위의 가입과 퇴출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점과 해운법에서 의무로 하고 있는 ‘공동행위에 대한 화주와의 협의와 운임의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절차상 흠결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실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첫째,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는 선사 누구든 자유로운 가입과 탈퇴가 보장되어 있었다. 합의 준수 요구가 있었다 해도 이것이 공동행위 탈퇴를 막았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둘째, 게다가 해운법에서 정기선 해상운송사간 공동행위에 대한 미신고 사안에 대해서는 단지 과태료 처분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화주단체와의 협의는 협의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제시되지 않아, 실효성 있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이에 대해 처분규정도 없는 사안이다.

셋째, 선사 간 공동행위인 운임인상을 해양수산부에 매년 신고하였는데도 공정위 심사보고서에서는 협의한 최소운임을 별도로 신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부대요금 변동 시 이를 즉시 공표해야 하는 운임공표제 관련 법률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 법에 의거하여 사안을 처리하지 않고 ‘부당한 공동행위’로 판단하여 과징금부과논리를 펴는 것 역시 해운법 입장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공정위 심사보고서에서 부당한 공동행위의 이유로 삼은 운임 미신고 행위는 해운법에서 처분규정을 두고 있는 사항임을 감안할 때 이번 건은 해운법에 의해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입법정신에 부합된다. 또한 위반 사항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했다 해도 이를 해운업계의 특수성에 맞게 처리하도록 해양수산부에 통보해야 할 사안이라 판단된다.

진짜 심각한 것은 만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다른 국적 회사들에 대해 국내회사들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는 정기선사간 ‘운임 공동행위’가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절차상의 이유로 공동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국제 정기선 해운의 특성 상 우리나라만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수출화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수출화주 화물에 대해 독점금지법 리스크가 운임에 부가될 우려가 있고 국내 서비스 항로를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한국 기항이 줄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입화물에 대한 해상운송비가 증가하고 오히려 수출입 화주의 적기 수송이 어려워질 수 있다. 외국 선사들의 부산항에서의 환적물동량이 줄어들면 아시아 허브항의 지위도 흔들릴 수도 있다.

정부가 부당한 공동행위를 이유로 우리선사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면 우리선사들은 이를 근거로 외국 화주들에게 손해보상소송을 당하는 일이 우려된다. 자칫 한진해운 사태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우리 선사에 대한 해외 화주들로부터의 신인도가 또 다시 추락하여 산업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진사태에서 정기선 해운의 몰락이 우리나라 수출업체의 경쟁력과 부산항의 위상을 크게 저하시킨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는데, 이와 같은 악순환이 또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해운업체 다수를 도산위기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하려는 조치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의 해운재건 노력에 힘입어 해운산업이 장기불황의 늪을 벗어나는 계기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또 다시 해운산업이 몰락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양창호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해운업계#해운재건#외항해운 수송능력#선박#운임 공동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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