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서방 발 빼자…한국 큰손들, 美 부동산 투자 러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8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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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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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강타하던 5월 미국 부동산 운용사와 컨소시엄을 꾸려 뉴욕 부동산 투자를 단행했다. 맨해튼의 명소인 ‘다리미 빌딩’ 근처 원 메디슨 애비뉴 빌딩 재개발 프로젝트의 지분 49.5%를 약 5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한국의 기관 투자자들이 최근 코로나19로 가격이 크게 내린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중국 등 다른 해외 투자자들이 주저한 사이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동산 시장 분석기관인 리얼 캐피털 애널리틱스 자료를 인용해 올 들어 9월까지 한국 투자자들이 15억6000만 달러(약 1조7300억 원) 상당의 미국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1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외국 투자자들 중 캐나다, 독일에 이어 3위(8.6%)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2억4000만 달러)에 비해 25.8%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10위(3.7%)에 불과했다. 중국의 경우 미국과의 갈등과 중국 내 자본 유출 관련 규제 때문에 미 부동산 투자가 침체기를 겪었다고 WSJ은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연기금과 생명보험사 등 한국의 기관 투자자들은 장기 세입자를 받는 오피스 빌딩이나 물류 창고 등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최근 아마존에 임대된 로스앤젤레스 인근 창고 건물을 사겠다는 매수 제안 18개 중 절반인 9개가 한국 투자자들의 주문이다. 시애틀에 있는 6억 달러 상당의 한 오피스 건물에서도 한국 투자자들이 매수 주문의 3분의 1을 써냈다. 이 건물을 중개한 부동산 서비스회사 뉴마크의 국제자본시장 부문 대표인 앨릭스 포셰이 씨는 “한국 투자자가 가장 높은 가격을 써냈고 결국 매매 가격도 올랐다”며 “한국 투자자들은 평상시보다 경쟁이 덜한 미 시장에서 기회의 창을 얻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은 부동산 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2017년 24조8000억 원이었던 국민연금의 부동산 투자 규모는 올해 2분기 32조5000억 원으로 31% 증가했다. 국민연금은 2025년까지 부동산을 포함한 대체 투자 비중을 15% 안팎까지 늘릴 계획이다.

한국 투자자의 투자 러시는 코로나19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도 원인이 됐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이에 기초한 환율 헤지 상품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한국 투자자들은 환변동에 대한 큰 부담 없이 부동산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또 투자자들이 한국 내에선 부동산 투자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로 풀이된다. 제프 프리드먼 메사웨스트캐피탈 공동창업자는 “미국이나 유럽 투자자들과 달리, 한국 투자자들은 코로나19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중소도시나 교외 지역의 오피스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부동산에 대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상담도 이어지고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은 “국내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산가들이 강남에 아파트를 살 이유가 줄었다. 원-달러 환율까지 떨어지면서(원화가치 상승) 미 부동산 투자로 시세 차익 뿐 아니라 환차익까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돼 출입국이 더 자유로워지면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jarrett@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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