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2억대 전세? 허위매물 판치는 중고플랫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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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2020.10.12 © News1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2020.10.12 © News1
‘서울 광진구 자양동 신축 오피스텔 전세 2억 원’

직장인 이모 씨(31)는 평소 자주 이용하던 중고거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을 살펴보다 가 깜짝 놀랐다. 많아도 몇 만 원 수준의 저가 물건이 주로 거래되는 앱에 수억 원 대의 오피스텔 전세 매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마침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던 터에 주변 전세 시세보다 5000만 원 정도 낮아 눈길이 갔다.

문제는 전세 가격 외에 기본적인 정보가 전무했다는 것. 판매자에게 쪽지를 보내자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로 오면 해당 매물의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는 “중개업소로 찾아가자 해당 매물은 이미 계약이 됐다며 다른 비싼 매물을 보여줬다”며 “허위 매물을 영업 수단으로 삼은 게 아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부동산 허위매물 단속의 타깃을 대형 부동산 플랫폼으로 삼은 사이 부동산 중개매물이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단속 이후 네이버나 직방·다방 등에서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한 매물이 급감한 대신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감시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동아일보가 부동산 허위매물 단속 계도기간이 종료된 20일 이후부터 이달 7일까지 중고거래 서비스인 네이버카페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에 등록된 부동산 중개매물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은 중개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고나라의 부동산 게시판이 가장 활성화돼 있는 ‘강남·서초·강동·송파’에는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매물 23건을 올렸는데 모두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했다. 공인중개사의 공시의무(중개사무소 소재지, 중개사무소 등록번호 등)를 누락했거나 관리비 및 주소지, 면적지 등을 표기하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대표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 매물을 올린 경우도 있었다.

당근마켓의 경우 전수조사 대신 사례 위주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서울 동작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 공인중개업소는 500건의 부동산 매물을 당근마켓에 등록했고, 모두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했다. 인천 남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도 217개의 부동산 매물을 올렸는데, 분양광고를 제외한 모든 매물이 공인중개사의 공시의무를 위반했거나 주소지 혹은 입주가능일 표기 등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8월 공인중개사법 개정으로 온라인상에 부동산 매물을 올릴 때 △주소 △면적 △가격 △주차대수 △방향 △방과 욕실 개수 △입주가능일 △관리비 등 중요 정보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위반 시에는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중개 대상이 아닌 매물을 허위로 게재하거나 매물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은폐, 누락하는 등의 소비자기만 행위가 적발되면 최고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다만, 개인 간 직거래를 목적으로 할 때는 공인중개사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플랫폼들이 정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온라인에서의 부동산 허위·과장 광고를 방지하기 위해 공인중개사법을 개정한 8월 21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시장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한 달 간 총 1507건의 허위매물이 신고 됐다. 이 중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에서의 신고는 ‘0건’이었다. 네이버와 직방·다방 등 대형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된 매물이 1297건(86%)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 감시를 피해 중고거래 플랫폼 등으로 부동산 허위매물이 퍼지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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