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 만들고 근무복 변경… 우리가 회사 바꾸니 애사심도 절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대우조선해양 ‘청년이사회’ 1년… 근속연수 10년 이하 직원 12명
경영회의 열고 CEO와 정례 만남… 시스템 개선 등 청년 목소리 전달
생생한 동영상 보고… 임원들도 호평

지난달 2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지원센터에서 제1기 청년이사회 멤버로 활동한 김보이 대리, 김진수 대리, 이병호 사원(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지난달 2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지원센터에서 제1기 청년이사회 멤버로 활동한 김보이 대리, 김진수 대리, 이병호 사원(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반차 제도 시행, 근무복 변경, 경영시스템 개선 추진, 디지털 교육 방안….

회사의 조직문화부터 시스템 개선까지 다양한 안건을 내고, 최고경영자(CEO)와 정례적으로 만나 논의했다. 회사 방침과 정책에 대한 의견도 별도로 개진했다.

주요 임원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아니다. 대우조선해양 근속 연수 10년 이하 20∼30대 직원들이 운영한 ‘청년이사회’의 최근 1년 이야기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불황 속에 사기가 떨어진 조직문화를 쇄신하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8월 청년이사회를 발족했다. 12명의 ‘청년임원’으로 구성된 청년이사회는 자체적으로 회사의 비전과 개선 사항을 논의하고 매월 주요 경영진과 만나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난달 24일 이사회 1기로 활약했던 김보이 대리(29), 김진수 대리(32), 이병호 사원(26)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왜 이렇게 결정됐지?’하는 많은 의문들이 해소됐고, 조직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다니는 직장에 더 애정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이사로 활동한다고 해서 추가 수당이나 별도 인센티브가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조직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발성과 적극성을 불러왔다. 최소 매주 2시간씩 회의를 했고, 주말에도 모여 생산성 향상과 관련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김보이 대리는 “기존 업무와 병행하면서 이사로 활동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우리의 문제의식을 회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책임감을 더 갖게 됐다”고 했다.

청년이사회는 회사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이병호 사원은 “회의 안건이나 자료 작성 등을 모두 스스로 알아서 정하고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를 위한 다양한 고민을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직원들을 성장시켰다.

보고 방식도 다양화했다. 뻔한 서면 보고서가 아니라 여러 부서 직원의 의견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CEO에게 보여줬다. 임원들은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새로웠다”는 반응이었다.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태도도 중요했다. 처음부터 “청년이사회와 주니어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이사회에 밝혔고, 중요한 안건이 있으면 해당 부서에 직접 연결해주기도 했다. 항상 이사들의 의견이 없는지 먼저 묻곤 했다.

김진수 대리는 “주니어가 정기적으로 경영회의에 참여하거나 사장님 옆에서 안건을 올리는 회사는 거의 없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런 기회 자체가 정말 큰 혜택이었고 회사를 다니는 데도 동기 부여가 됐다”고 했다. 2기 이사들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맺어 더 효과적인 운영을 도울 계획이다.

이들은 소통 문제를 겪는 다른 조직에도 주니어 보드를 추천했다. 물질적 보상 못지않게 심리적 보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보이 대리는 “젊은 세대를 두고 ‘애사심이 없다’고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며 “‘회사가 결정했으니 무조건 따르라’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만 알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대우조선해양#청년이사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