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 명품 먹을거리]<4>경북 경산 청포도

동아일보 입력 2010-09-20 03:00수정 2010-11-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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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도전 끝 ‘포도명장의 꿈’ 주저리 주저리…
‘포도 명장’ 김진수 씨가 수확을 앞두고 청포도를 살펴보고 있다. 김 씨가 생산하는 ‘로자리아 비앙코’ 청포도는 당도가 일반 포도보다 훨씬 높다. 경산=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14일 경북 경산시 남산면 전지리 김진수 씨(61) 농장. 여전히 뜨거운 늦여름 햇살 아래 비닐하우스에서는 이육사 시인의 시처럼 주렁주렁 열린 청포도를 따는 농민들의 손길이 바쁘다. 시인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염원하는 ‘꿈’을 고향의 청포도에 담았다. ‘포도 명장’ 김 씨에게도 청포도는 농사 인생에서 ‘꿈’이었다.

○ ‘브릭스 20.1’ 강렬한 단맛

김 씨는 32년째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1980년대에는 당시 국산 포도주인 ‘마주앙’에 납품했다. 1991년 경산에서 처음으로 노지가 아닌 하우스에서 거봉 품종으로 시설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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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는 고부가가치 상품인 청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김 씨는 ‘로자리아 비앙코(Rosaria Bianco)’라는 품종을 도입했다. 일본 포도연구소에서 아라비아 원산의 ‘로사키’에 아프리카 원산의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를 교배해 만든 품종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포도육종 전문가 노정호 박사에 따르면 전 세계 포도 품종은 8000여 종에 이르며 국내에서는 이 중 50여 품종만이 재배되고 있다. 국내서 가장 많이 먹는 포도는 자흑색의 ‘캠벨 얼리’로 국내 포도 재배 면적의 74%를 차지한다. 알이 굵은 거봉이 12%로 뒤를 잇는다. 청포도도 몇 종이 재배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상태.

김 씨가 재배하는 로자리아 비앙코는 과육이 연하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 당도측정단위 브릭스(Brix)로 20.1에 이른다. 캠벨 얼리가 14∼16, 거봉이 16∼18이니 한번 맛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단맛이 강렬하다. 당도가 높으면서도 신맛은 없어 상쾌하며, 껍질이 얇고 씨도 무르기 때문에 영양소가 풍부한 껍질과 씨를 함께 먹을 수 있다.

○ 유비쿼터스 기술로 난방 조절

로자리아 비앙코는 우수한 품종이지만 재배는 그만큼 까다로웠다. 김 씨는 처음에는 여느 포도처럼 노지에서 재배했지만 겨울이 닥치자 모두 죽어버렸다. 비닐하우스에 옮겨 심고 정성껏 길렀지만 이번에는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았다.

“과일 중에서도 포도 농사가 제일 까다로운데 청포도는 더 어려워요. 추위에 약해 비닐하우스 온도를 잘 맞춰야 하기 때문에 비닐을 이중으로 치며 정성을 들였어요. 그런데도 어린 유목(幼木) 때는 열매를 안 맺더라고요.”

실패를 거듭하며 그는 청포도를 하나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1∼2m 간격으로 촘촘히 심어도 잘 자라는 일반 포도와 달리 청포도는 촘촘히 심으면 과실이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10m 이상 간격으로 듬성듬성 나무를 심고 비료, 온도, 수분을 계속 관리해주길 5년. 결국 열매가 제대로 열렸다. 농진청 노정호 박사는 “로자리아 비앙코는 원래 남유럽과 중동의 따뜻한 지역산으로 국내 기후와 맞지 않는다”며 “이 품종을 성공적으로 재배한 것만으로도 명인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청포도 재배 성공비법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다. ‘경산포도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해 지역 주민과 청포도 재배법을 공유했다. 농민들끼리 하우스 가온시기를 조절해 출하가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유통구조도 개선했다. 풍년이 들면 공급이 너무 늘어 가격이 폭락하는 고질적인 ‘홍수 출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유비쿼터스 기술을 적용해 집에서도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하우스 안의 온도 습도를 조절하고 창을 자동으로 여닫는 첨단농법도 도입했다.

○ 빈촌이 경산 최고의 부촌으로


대표적인 빈촌이던 전지리는 청포도 농사 덕분에 지금은 경산 최고의 부촌으로 꼽힌다. 경상북도는 포도 농법을 선진화해 지역 농가에 기여한 공로로 김 씨를 ‘포도 명장’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부터 김 씨의 포도를 공급받아 ‘청포도 선물세트’를 개발했다. 올 추석에 맞춰서는 300상자(4.5kg)를 준비했다. 한 상자에 11만 원의 고가이지만 고급선물로 인기가 좋아 매일 공급물량을 조절할 정도. 롯데백화점 박기범 농산MD는 “국내 유통업체 중 청포도를 선물세트로 개발한 것은 처음”이라며 “차별화된 고품질 농산물을 계속 발굴해 국내산 과일이 최고 명품으로 인정받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경산=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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