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전시회라더니… 노출 전시장된 ‘지스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30일 21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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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언니는 왜 옷을 안 입고 있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옆에 서 있던 엄마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는 핫팬츠, 배꼽티 차림의 여성 모델이 서 있습니다. 폰카와 디카 등 찍을 거리를 들고 모여 있는 사람들, "좀 더, 좀 더"라며 대놓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 엄마는 딸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속삭이더니 금방 다른 부스로 자리를 뜹니다.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 올해 벌써 5회 째인 이 행사는 처음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렸습니다. 국내외 196개 업체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참가 업체들은 대형 스크린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출력 빵빵한 스피커로는 실감 나는 사운드를 연신 틀어대며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업체들은 성공적인 전시회를 위해 늘 심장 폐부를 관통할 '한 방'이 필요합니다. 자극의 역치(¤値)를 높이는 데는 행사장 도우미와 게임 캐릭터들의 섹시한 복장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을 겁니다. 그간 지스타 참가 업체들은 '더 섹시하게', 혹은 '더 강렬하게'라는 모토를 암묵적으로 세워 왔습니다. 게임보다 도우미가 더 화제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올해 주최 측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행사업체 매뉴얼에 '운영인력 복장규정'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도우미 의상 규정만 △비키니 및 속옷 형태 착용 금지 △상의의 등 부분은 3분의 2 이상 노출 금지 △옆트임 금지 등 5개에 이릅니다. "미국의 'E3' 같은 세계적인 행사로 키우기 위해 진지한 게임쇼를 만들겠다"는 주최 측 의도는 꽤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엔씨소프트가 내년에 선보일 차기작 '블레이드 앤드 솔'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게임 속 캐릭터를 연출한 모델이 거의 팬티 차림으로 전시장에 나타난 겁니다. 물론 상의는 입었죠. 참고로 이 게임은 아직 심의등급을 받지 않았지만 게임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다소 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행사장 안에 미성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엔씨소프트도 이를 받아들이고 행사 1시간 만에 모델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이 보도되면서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모델', '블레이드 앤드 솔'이 온라인 포털 검색 순위 상위에 올랐습니다. 엔씨소프트는 뜻하지 않게 차기작 홍보 효과를 본 셈이 됐습니다.

다른 업체들의 반응은 즉각 나타났습니다. 비키니 스타일과 옆트임 등 주로 하의를 단속하자 몇몇 업체들은 가슴이 훤히 드러난 쫄티로 도우미들을 갈아입혔습니다. 복장 규정을 교묘히 피한 셈이죠. 못 벗으면 찢어서라도 홍보를 하겠다는 셈이죠.

한 업체 관계자는 "복장 규정을 제대로 안 지킨 업체가 오히려 몇 배의 홍보를 한 셈이 됐다"며 씁쓸해 했습니다. 업체들끼리 지나친 경쟁을 자제하고 품격 있는 게임쇼로 만들자는 노력, 하지만 여전히 복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 단순히 게임 업체들의 잘못으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 그 어떤 키워드보다 '섹시'나 '노출'에 '광클'하는 누리꾼들이 있으니까요.

"저 언니는 왜 옷을 안 입었어"라고 묻는 꼬마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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