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대기업 슈퍼’ 출점 규제 추진 논란

입력 2009-07-01 02:57수정 2009-09-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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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구멍가게 “반년내 41% 망할판” 대기업 슈퍼“고용 늘고 소비자 이익”
소상인 “매출 30% 줄어… 맨주먹으로 싸우는 격”
대기업 “대형마트 1곳 생기면 일자리 2500개 창출”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이문 골목시장’.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민생 현장 점검차 방문해 떡볶이를 먹어 유명세를 탄 곳이다. 그러나 골목 내 상점들은 군데군데 간판이 떼어져 있는 채 황량한 분위기였다. 시장 내 한 야채가게에는 주인은 없고 TV 소리만 크게 울리고 있었다. 10여 분 후 나타난 야채매장 주인인 최모 씨(64)는 노란색 대형마트 비닐봉지를 들고 지나가는 주부를 가리키며 “큰길에 이마트가 들어선 후 골목시장으로 장을 보러 오는 주부가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이곳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는 올해 3월 개점한 ‘이마트 메트로’가 있다. 면적 1739m2(526평)으로 3300m2(1000평) 안팎인 일반 대형마트의 절반 크기다. 이른바 ‘대기업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으로 불린다. 》

시장 내 안모 사장(56)도 “최근 2개월 사이 골목 내 야채와 과일 가게, 빵집 등 3곳이 문을 닫았다”며 “대형마트보다 작은 슈퍼인데 시장이 이렇게 초토화될 줄 예상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대형 유통업체의 SSM 진출 규제를 위한 법안 마련에 나선 가운데 SSM과 동네 구멍가게가 ‘골목상권’을 놓고 확전(擴戰) 양상에 들어갔다.

○ 서민 챙기기에 논란된 대기업 슈퍼

대형마트 출점 금지 규제는 최근 몇 년간 유통업계에서 첨예한 논란거리였다. 17대 국회에서는 대형마트 출점 규제 법안이 10여 건 제출됐지만 양측 이해관계가 얽혀 논란 끝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나 최근 지식경제부와 한나라당이 당정협의회에서 3000m² 이상 대규모 점포에만 적용되는 개설 등록제를 ‘대규모 점포 및 대규모 점포의 직영점’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대통령도 이문 골목시장을 방문해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대형마트 때문에 어렵다고 해서 큰일”이라며 “정부가 대안이 없는지 여러 각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에 불씨를 댕겼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08년까지 대형마트 매출액이 9조2000억 원 늘어난 반면 재래시장 매출액은 같은 기간 9조3000억 원 줄었다. 재래시장 매출액이 고스란히 대형 유통업체로 옮겨갔다는 게 중기청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 유통업체가 회원사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이승한 회장(홈플러스그룹 회장)은 최근 SSM 출점 규제안과 관련해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규제다. 필요하다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정치인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후 전국소상공인단체협의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이 회장의 발언은 소상공인들을 향한 선전포고”라고 맞섰다.

○ “구멍가게는 맨주먹으로 싸운다”

중소기업중앙회도 30일 SSM 주변의 구멍가게, 야채 청과점 등 중소 유통업체 상인 226명을 대상으로 피해 사례를 낱낱이 조사해 중소 유통업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에서 8년간 구멍가게를 운영한 A 씨는 건물주에게서 ‘나가달라’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SSM의 시장조사 결과 목이 좋다며 건물주에게 현재 임대료보다 2배 높게 불렀기 때문이다. A 씨는 “영업을 계속하려면 임차료를 2배 이상으로 올려 줘야 하지만 형편상 어렵다”며 “생업과 다름없는 일을 그만둬야 하니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B 씨는 주변에 SSM이 들어서는 것에 맞서서 4000원짜리 간장을 3500원으로 할인 판매 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가격을 올렸다. 간장을 납품하는 도매업자가 B 씨를 찾아와 ‘SSM이 해당 대기업의 계열사에 납품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압력을 넣어 어쩔 수 없다. 가격을 SSM 수준으로 올려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B 씨는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을 유치하려던 자구 노력이 허망하게 끝났다”며 “SSM의 불공정 행위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중소 유통업체의 매출도 줄었다. 응답 상인들은 SSM 입점 이전에 하루 평균 매출액이 161만7000원에서 111만9000원으로 49만7000원(30.8%) 줄었다고 답했다. 또 ‘현재의 경영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41.2%가 ‘6개월을 못 버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소상인은 “소상공인들을 맨주먹으로 대기업과 싸우게 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대기업 “소비자 권익-상권 형성 도움”

반면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SSM을 규제로 막는 것은 값싼 좋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할 뿐 아니라 시장원리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신세계 측은 “SSM이 들어서면 동네 슈퍼가 없어진다고 비난하지만 해외 사례 등을 보면 오히려 인근에 관련 상권이 활성화되는 데에 기여하고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고 강조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영업하는 영세한 동네슈퍼보다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더 많은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한다는 것. 신세계 자체 분석에 따르면 대형마트 1곳이 새로 생길 때마다 일자리 2500여 개가 창출된다.

롯데마트 측은 “매장 위치를 정할 때 자체적으로 상권을 조사해 인근에 자영업 슈퍼마켓이 적은 지역에 매장을 낸다는 기준을 지키려 노력하는 등 나름대로 ‘상도’를 지키며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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