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칼자루 맡겼더니 소극적” 정부주도론 꿈틀

  • 입력 2009년 1월 21일 02시 54분


강정원 국민은행장(가운데)을 비롯한 채권 은행장들이 20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건설사와 조선사 112곳에 대한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강정원 국민은행장(가운데)을 비롯한 채권 은행장들이 20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건설사와 조선사 112곳에 대한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연쇄부실 뇌관’ 프로젝트파이낸싱 의존 회사 걸러내

건설사 퇴출돼도 분양 계약자 돈 떼이는 일은 없어

채권은행과 금융 당국이 20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갈 14개 기업과 퇴출될 2개 기업을 확정함에 따라 금융시장 안정과 신용경색 해소의 전제조건인 1차 구조조정 작업이 일단락됐다.

당국은 이번에 재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건설사와 조선사의 신용도를 평가했기 때문에 구조조정 대상이 적었지만 다음 달 실시하는 2차 구조조정에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업체가 퇴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해당 기업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은행들에 옥석(玉石) 가리기의 칼자루를 맡긴 결과 당초 의도에 비해 구조조정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부실 많은 16곳, 구조조정 바로 착수

워크아웃이나 퇴출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실적이 부진할 뿐 아니라 잠재 부실이 많아 그대로 놔두면 위험을 감당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퇴출 대상으로 분류된 대주건설은 2007년 순이익이 94억 원으로 2006년에 비해 38억 원(28.8%) 줄었다. 본업인 아파트 분양으로 거둬들인 수익이 2006년 1417억 원에서 2007년에는 414억 원으로 급감했다.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원가를 실제보다 부풀린 사실이 드러나는 등 경영 투명성에서 일부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업체 가운데 막판에 퇴출 리스트에 오른 C&중공업은 작년 1∼9월에 419억 원의 적자를 냈다. 2006년 적자로 돌아선 이래 가장 많은 손실이다.

워크아웃 대상 14곳 중 상당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많았다. 경남기업의 PF 대출액은 8543억 원이나 됐다. PF 대출이 많은 기업이 무너지면 보증을 선 대형 시공사까지 자금난에 빠져 전체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절차는 이번 주부터 바로 시작된다.

채권은행들은 일단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자구계획서를 받아본 뒤 실사 기관을 선정해 기업의 재무구조와 자금흐름, 사업 전망을 분석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채권단 동의를 거쳐 채권 재조정, 금리 감면, 원금 탕감, 신규 지원 등 최종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한다.

퇴출 대상으로 분류된 기업은 대체로 법정관리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정상화를 꾀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 ‘미완성 구조조정’ 지적

일부 전문가는 “부실기업을 모두 걸러내지 못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고 비판한다.

112개 평가 대상 기업 중 20∼30%가 C등급 이하를 받아 워크아웃에 들어가거나 퇴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4%만이 구조조정 리스트에 오른 것을 지적한 것이다. ‘시장에 멀쩡한 사과와 함께 뒤섞여 있는 썩은 사과 부위’를 모두 도려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이에 대해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C나 D등급을 받은 건설사의 PF 보증금이 전체 PF 대출 규모의 20.3%에 이른다”며 부실을 많이 걸러냈음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이 주도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으로는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은행으로선 구조조정 기업이 늘어나면 그만큼 손실을 떠안아 은행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나중에 ‘살릴 수 있는 기업을 퇴출시켰다’는 법적인 논란에 휩싸일 것을 염려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2차 구조조정은 강도가 세질 듯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거나 퇴출돼도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분양대금을 떼이지 않는다.

예컨대 퇴출 대상인 대주건설이 시행 중인 주택 사업은 대한주택보증과 분양보증 계약이 체결돼 있어 기업이 청산된 이후 계약자가 계약해지를 원하면 납입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대한주택보증은 직접 사업장을 인수한 뒤 시공사를 선정해 공사를 계속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공사가 다소 지연될 수는 있지만 금전적인 손실을 볼 가능성은 없다.

주채권은행들은 이르면 다음 달 시공능력 100위권 이하의 건설사와 이번 평가에서 제외된 14개 조선사 중 98∼100개 회사를 대상으로 2차 평가를 시작하기로 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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