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진정… 고통스런 불황 올 수도”

  • 입력 2008년 10월 13일 02시 55분


해외석학 3명 위기극복 e메일 인터뷰

《지난달 14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메릴린치, AIG의 유동성 위기 등으로 본격 점화했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거의 한 달이 됐다.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글로벌 동반 금리 인하, 기업어음(CP) 매입 지원 등 사상 초유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는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리처드 실러 뉴욕대 교수,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 등 해외 석학들과의 긴급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고 금융위기가 언제쯤 진정될 것으로 보는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

닐 퍼거슨 하버드대교수 - 은행지분 매입 등 추가 조치 취해야

리처드 실러 뉴욕대교수 - 주택값 바닥 근접 구제안 효과 볼것

신현송 프린스턴대교수 - 위기 진정 안되면 금리 계속 내려야

이들 석학은 각국 정책 당국들의 대응에 대해 “적절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 등의 추가 금리 인하, 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현재의 금융위기가 올해가 끝나기 전에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나면 길고 고통스러운 글로벌 경기침체가 기다리고 있으며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 미국 정책 당국, 해야 할 일 했지만 충분치 않아

일단 해외 석학들은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주도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 등에 대해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실러 교수는 “이 같은 조치가 없었다면 금융위기는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퍼거슨 교수도 “FRB는 지금까지 바람직한 일을 해왔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조만간 또다시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교수도 “현재의 위기상황이 조만간 진정되지 않는다면 FRB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더 낮춰야 할 것”이라며 “중앙은행은 유동성 공급 규모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야

퍼거슨 교수는 특히 미국도 영국과 같이 중앙은행이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자본을 확충해 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제금융을 통해 금융회사들로부터 부실 자산을 매입해 준다고 해도 은행들은 대규모 상각과 손실 때문에 자본을 늘릴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정부가 필요한 지분을 매입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퍼거슨 교수는 “미 재무부는 누군가 은행의 부족한 자본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며 “영국이 주요 은행들의 자본 확충에 나선 것은 잘한 결정이며, 미국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은행 자본 확충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영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정부가 은행의 자본 확충에 나서는 문제에 대해 정치적인 논란이 있으며, 법적인 제약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실러 교수는 미국 정부가 부실자산을 매입해 주면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높아질 것이므로 굳이 직접 자본을 투입할 필요는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가 대공황 때처럼 주택 소유자로부터 직접 모기지를 구입해 줘야 한다는 미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퍼거슨 교수와 실러 교수 모두 “불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 의견 엇갈려

실러 교수는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며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을 끝내기에 충분한 규모”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준비작업이 끝나는 대로) 부실자산 매입 프로그램이 실행에 들어가면 금융위기 해결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퍼거슨 교수는 “7000억 달러는 미국이 금융회사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필요한 금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신 교수는 “미국 은행과 금융회사들의 총 자산 규모가 20조 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규모”라면서도 “다만 부실자산 매입 프로그램이 얼어붙은 자금시장 경색을 풀어주는 심리적인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금융위기 이후에는 글로벌 경기침체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부동산가격 하락에 대해 실러 교수는 “바닥에 매우 근접했다”고 평가했으며 퍼거슨 교수는 “향후 6개월 내에 바닥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부동산가격이 바닥에 도달할 때까지는 2년 정도가 걸릴 것이며,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더 늦춰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위기 해결 시기에 대해 퍼거슨 교수는 “4분기(10∼12월) 중에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와 같은 시장금리가 하락하면서 현재의 금융위기가 진정될 것”이라고 봤다. 실러 교수는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이 본격적으로 집행될 때 금융위기는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며 올해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교수는 “주요국들의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쳐야 금융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며 “현재의 금융위기가 잦아든다고 해도 앞으로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러 교수는 “금융위기가 끝나고 나면 내년의 문제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퍼거슨 교수는 “금융위기가 해결될 때쯤 경기침체 문제가 극에 달해 새로운 신용위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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