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호주에 매각…한국 영화산업 꺾어지는 신호?

  • 입력 2007년 7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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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롯데그룹과 함께 국내 영화산업 ‘빅3’ 업체 중 하나인 오리온그룹이 극장 체인 업체인 ‘메가박스’를 외국계 자본에 넘긴다. 오리온그룹 계열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미디어플렉스는 18일 자회사인 메가박스의 주식 293만754주(지분 53.9%)를 호주계 금융회사인 맥쿼리가 출자한 신설 법인인 ‘코리아 멀티플렉스 인베스트먼트 코퍼레이션(KMIC)’에 팔기로 했다고 밝혔다. 매각 가격은 1455억8822만 원.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공격적으로 육성했던 오리온이 제작, 배급과 함께 영화산업 3대 축 중 하나인 극장 사업을 접은 것을 두고 한국 영화산업이 추락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

관객수-점유율 감소로 운영위기

지난해 개봉영화 108편중 82%가 적자

외국 영화사에 재매각땐 영화계 타격

○ 추락하는 한국 영화산업

영화계에서는 오리온이 극장 사업을 접은 것은 한국의 영화산업이 직면한 어려움이 만만찮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개봉된 한국 영화는 모두 108편. 한 주에 두 편꼴로 극장에 선을 보였다. 이 가운데 수익률 50% 이상을 낸 ‘대박’ 영화는 ‘왕의 남자’ ‘작업의 정석’ ‘투사부일체’ ‘달콤, 살벌한 연인’ ‘타짜’ ‘괴물’ 등 6편에 불과하다.

‘가문의 부활’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수익률이 30% 수준. ‘라디오 스타’ ‘음란서생’ ‘사생결단’ ‘청춘만화’ ‘맨발의 기봉이’ ‘흡혈형사 나도열’ ‘구세주’ 등은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겼다. 전체 제작 편수 중 88편(81.5%)은 적자였다.

몇 편의 대박 영화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밀양’으로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산업 차원에서는 ‘외화내빈(外華內貧)’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추락의 원인으로 우선 과당 경쟁을 꼽았다. 영화산업이 뜨면서 이 분야에 깊은 이해도 없는 자본들이 ‘대박’을 꿈꾸며 몰려들었고 이에 편승한 영화사들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을 쏟아 내면서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멀리하게 됐다는 것.

흥행 실패는 투자 유치에 악영향을 미쳤고 투자가 여의치 않아 제작비를 줄이면 제품 수준이 떨어져 흥행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그 결과 ‘쉬리’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만든 MK픽처스가 강원방송에 팔리는 등 제작사들의 사정도 나빠졌고, 그 여파는 영화 메이저 중 하나였던 오리온에도 미쳤다.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영화산업에 몰려든 자본이 영화 제작 시스템이나 영화의 질적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고 한탕만을 노리면서 오히려 산업을 왜곡시켰다”며 “소재의 다양성, 배우가 아닌 대본 중심의 영화, 왜곡된 유통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온다”고 지적했다.

○ 오리온 엔터테인먼트 사업 접을 수도

오리온의 메가박스 매각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분석도 많다. 영화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CJ나 롯데에 비해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오리온이 결단을 내렸다는 것.

메가박스는 2005년과 비교해 지난해 실적이 상당히 나빠졌다. 이 기간 매출은 999억 원에서 1091억 원으로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141억 원에서 140억 원으로, 순이익은 103억 원에서 87억 원으로 각각 줄었다.

백운하 오리온그룹 홍보부문 상무는 “극장업은 전략이나 마케팅 능력보다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이 드는 사업”이라며 “매각 대금으로 차라리 영화 제작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배급-극장을 모두 보유하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영화 시장에 뛰어든 오리온이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극장을 포기한 것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고 해석하는 영화인도 많다.

○ 국내 영화업계 재편 가능성도

CJ CGV와 롯데시네마 등 경쟁업체들은 이번 매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3각 경쟁 체제를 유지해 온 메가박스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만큼 극장업계가 큰 변화의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다.

영화업계에서는 결국 미국 영화사인 20세기 폭스나 통신회사인 SK텔레콤, KT 중 한 곳이 메가박스를 인수할 것으로 전망한다.

20세기 폭스사에 넘어가면 외국 영화사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상영할 스크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한국 영화계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만약 통신업체가 메가박스 인수를 시작으로 영화 제작, 드라마, 쇼 등 콘텐츠 사업까지 뛰어들면 영화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까지 거대한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통신회사가 메가박스를 살 경우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통신산업에 융합이 일어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며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산업이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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