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원목]빗장 건 교육시장, 잃는게 더 많다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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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23일부터 5일간 제주도에서 제4차 협상이 열린다.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교육 부문에 대해서는 극단적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FTA가 체결되면 국내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또 고가의 외국 교육서비스의 국내 진입이 허용돼 국내 사교육을 부채질하고 교육 분야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며, 토플 토익 및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등 시험 관련 서비스가 무분별하게 들어와 수험 준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극단의 비관적 상황을 가정하며 개방을 거부하는 자세가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FTA는 추가적인 개방과 제도의 선진화를 통해 진정한 선진국이 되고자 정부가 선택한 수단이다. 교육 분야도 합리적인 개혁이 필요하고, 국제적인 경쟁 속에 있으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손익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3차까지 협상을 진행한 결과 미국은 한국의 공교육 개방을 원하지 않으며, 비영리 학교법인 제도를 영리 법인으로 전환하라는 식의 압력을 행사할 의사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토플 토익 및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 등 테스트 시장과 온라인 교육시장 개방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이러한 시험과 원격 교육에 대해 별다른 정부 규제가 없어 FTA 체결 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결과 국민의 요구 수준이 크게 높아졌으나 공급의 질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계속 문을 걸어 놓는다면 수요자는 해외에서 서비스를 소비하려 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해외 유학생과 조기 해외 유학 열풍은 질 높은 교육에 대한 수요의 반영이다.

고급 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국내 공급 간의 괴리를 해결하지 않은 채 개방 불허정책을 고집할 경우 해외 원정 수요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고품질의 서비스 혜택을 받는 계층은 주로 고소득층이므로 교육의 양극화 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다. 좋은 조건의 개방을 통해 한국 학생이 온라인 등으로 미국의 선진 교육서비스를 쉽게 접하고 국내에서 외국 학위를 취득한다면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해외 원정 수요를 국내로 돌리는 유인이 된다.

다만, 개방을 통한 저질 서비스의 무분별한 반입, 공교육을 위협하는 교육 파행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규제 권한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FTA 서비스 협상에서는 개방하는 서비스 부문에 대해서 규제 권한을 미리 유보해 두는 방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학 교육서비스는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미국 대학과의 교육 프로그램 공동 운영, 학점 교류, 교수 교환 활성화를 통해 국제화된 교육을 국내 대학이 제공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외국학생 유치율은 최저 수준이지만 해외 유학생 수는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수준 높은 대학을 유치하고 경쟁 체제를 만들어 국내 교육의 질을 끌어올린다면 외국 유학생 유치가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FTA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현실이 국익과 교육의 미래를 위해 심히 우려스럽다. 교사나 직장인은 직장 내 교육이나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FTA 협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의 정보를 제공 받을 필요가 있다. 협상을 담당하는 정부는 미국의 요구가 무엇인지,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사실 및 객관적 예측을 교육 현장에 제공해야 한다. 이런 사실과 정보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기초로 FTA와 대외 개방에 대한 교육이 실시될 때, 교육의 진정한 정치적 중립성이 달성될 수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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