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법 시행 1년…소송은 한 건도 없었다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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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엄살이었나, 폭풍 전야(前夜)인가.’

올해 1월 1일 발효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이 법의 도입을 둘러싸고 재계와 정부 여당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하지만 증권집단소송은 아직 한 건도 제기되지 않았다.

재계는 증권집단소송이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고 거물급 법조인을 잇달아 영입해 법무팀을 강화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은 왜 한 건도 나오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제기될 가능성은 없을까.

○ 과거분식(粉飾) 2년 유예의 영향

국회가 재계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여야 합의로 과거의 분식회계에 대해 2007년 말까지 집단소송 대상이 되지 않도록 증권집단소송법 부칙을 바꿔 준 게 결정적이었다.

이 기간 중 과거 분식에 대해 기업들이 ‘고해성사’를 하면 금융감독원의 회계 감리를 면제해 주고 집단소송 대상이 되지 않도록 했다. 투자자들이 과거의 분식을 밝혀냈다고 하더라도 2007년 말까지는 집단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과거 분식은 그렇다 치고 현재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회사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들이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거짓 장부’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고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인과관계를 투자자들이 자체적으로 입증해야만 소송을 낼 수 있다.

○ 변호사업계도 소송 기피

분식회계 외에 주가 조작도 증권집단소송의 주요 타깃이다.

분식회계의 경우엔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반면 주가 조작에 대해서는 자산 2조 원 미만 기업도 집단소송 대상이다.

회사가 내부자거래를 하거나 주가 조작을 해 소액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면 소송에 나설 법하다. 하지만 이런 소송을 낸 사례는 아직 없다.

무엇보다도 별로 돈이 되지 않아 집단소송에 적극적인 변호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막대한 소송 비용과 장기간의 소송 기간 또한 집단소송을 꺼리게 하는 이유다.

집단소송에 걸리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해 소액투자자들은 더 큰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초기 소송과 관련된 비용은 모두 변호사가 부담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하는 대형 로펌들이 적극적인 집단소송을 꺼리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을 내려다 포기하고 개별소송에 나선 사례도 있다.

상장회사인 에스씨에프(옛 신촌사료) 투자자 52명은 5월 초 회사 측이 ‘줄기세포를 이용한 시각장애인 치료법을 개발했다’면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내려다 포기했다.

사건을 맡은 김주영 한누리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처음엔 집단소송을 생각했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소송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주식 취득 시기와 가격 등 피해자들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지 않아 개별소송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 재계, “한번 불붙으면 정신없을 것”

시행 초기단계여서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집단소송은 대기업과 시민단체 사이에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김 변호사는 “집단소송이 시행되면 소송이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는 재계의 목소리는 과장”이라며 “원고 쪽에서 소송을 제기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김상헌 ㈜LG 법무팀장(부사장)은 “아직도 집단소송의 대상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책임 범위가 애매하고 이 때문에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남소(濫訴)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12월 결산법인의 회계 장부가 공개되는 내년 3월 이후엔 집단소송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대기업들이 법무팀을 강화한 것도 사전에 꼼꼼한 법률 검토를 거쳐 집단소송을 사전에 막겠다는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장 법률사무소 고창현 변호사는 “집단소송이 한번 제기되고 소송절차가 간소해지면 소송이 봇물 터지듯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과거 분식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시한인 2007년 이후엔 어느 기업도 안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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