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고금리… ‘사면초가의 중소기업들’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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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공단의 한 제조업체 작업장. 최근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악화되면서 인건비를 부담스러워하는 업체들이 야간 잔업을 대폭 줄이고 있다. 안산=이훈구 기자
18일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공단의 한 제조업체 작업장. 최근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악화되면서 인건비를 부담스러워하는 업체들이 야간 잔업을 대폭 줄이고 있다. 안산=이훈구 기자
《“경기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들 현장에 한 번만 와 보라고 하십시오. 고유가, 고금리에 당장 겨울에 공장 난방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값은 끝없이 올라가는데 납품 단가는 제자리다. 지난주에는 금리까지 인상됐다. 사람을 쓰려고 해도 젊은 인력은 중소기업을 외면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지난달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대기업은 2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지만 중소기업은 73으로 전달보다 1포인트 낮아졌다.》

○ 적막감 감도는 공단의 밤

한국에서 중소 제조기업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 공단. 요즘 이곳은 오후 6시만 되면 적막이 감돈다. 일감이 준 데다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아 잔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많기 때문.

중소기업 사장들은 “예전 같으면 밤에도 불을 밝히며 신나게 공장을 돌렸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시화공단에 있는 도금업체 H사도 지난달부터 야간 조업을 중단했다. 파트타임 근로자도 20명가량 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인 10역’을 해야 한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 회사는 당초 올해 매출액 목표를 50억 원으로 잡았지만 포기한 지 오래다. 공단 내에서는 ‘월급이나 제때 주면 성공한 기업’이라는 말을 듣는다.

H사 박모(50) 사장은 “하반기 주문량이 30%나 줄어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건비 자체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재 값 등 고정비용이 너무 올라 기술 개발이니 뭐니 엄두가 안 난다”고 한숨을 지었다.

자동차부품을 제조하는 B사의 사장(52)도 “납품 단가는 몇 년째 그대로인데 금리까지 올라 앞이 캄캄하다”며 “경기가 풀리고 있다는 얘기만 들으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유가가 오른 탓에 공단 안의 차량 소통도 이전보다 한산해졌다. 다만 ‘채용 공고’, ‘어음 할인’ 등의 간판이 군데군데 보일 뿐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안산출장소는 “부도 어음 대출을 받으러 오는 사장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부동산 거래도 뚝 끊겼다. 작년까지만 해도 거래가 심심찮게 있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이제는 매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반월공단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4, 5개월 동안 한 건의 매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 수출도 내수도 돌파구가 없다

수도권의 다른 지역도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경기 화성시에서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S사의 허모(46) 사장은 얼마 전 올해 손익을 계산해 보다가 막막함을 느꼈다.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자재 값이 지난해에 비해 70∼100% 올랐지만 납품 단가는 10%밖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 이 상태라면 당기순손실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경쟁업체는 40여 개에 이른다.

허 사장은 “인력은 없고 원자재 값은 치받는 상황”이라며 “다들 인도나 베트남으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의 D사 홍모(47) 사장은 “중국산이 시장을 모두 잡았다”며 울상이다. 공장에서 쓰는 산업용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환율이 급락해 작년까지 하던 수출마저 올해부터 중단했다. 내수 침체에 수출 판로까지 잃은 것.

그는 “우리의 50% 가격밖에 안 되는 중국산이 3, 4년 전부터 들어왔다”며 “물건을 대량으로 가져다 쓰는 곳은 중국산만 찾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안산·화성=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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