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동산정책 헛발질… 강남 치솟고 강북 제자리

  • 입력 2005년 6월 1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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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잡는 정책에 강남이 웃는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대책이 나왔지만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 분당신도시와 용인의 집값이 거의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서울 강북 등 다른 지역의 집값은 제자리걸음이어서 강남지역과의 집값 차가 더욱 벌어지는 양상이다.

취임 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부동산으로 돈 버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강남 불패(不敗)라지만 그에 관한 한 대통령도 불패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 등 ‘강남지역’을 타깃으로 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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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년 반 정도 지난 현재 정부가 잡은 것은 강남을 제외한 지역의 집값이라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 강남 ‘현 정부가 고맙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 말 대비 2005년 6월 8일 현재 서울시 25개 구별 아파트 값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가 확연히 드러난다. 송파구(36.68%) 강동구(29.31%) 강남구(24.68%) 서초구(21.65%)가 상위 1∼4위를 휩쓸었기 때문.

송파구 문정동 훼밀리아파트 32평형은 올해 초 5억500만 원에서 최근 7억500만 원으로 2억 원이 오르는 등 올해 들어 이 지역 집값은 다시 치솟고 있다.

강남지역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분당신도시와 용인지역 집값은 ‘판교발(發) 후폭풍’으로 그야말로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분당신도시 정자동 파크뷰 54평형은 최근 한 달 새 1억5000만 원 오르며 15억2500만 원이 됐다. 용인시 성복동 LG빌리지 3차 92평형도 호가가 12억5000만 원으로 한 달 동안 1억 원가량 뛰었다.

○ 비(非)강남지역은 삼중고에 시달린다

정부의 잇단 규제는 비강남지역 부동산시장에서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강남지역과 분당, 용인을 제외한 지역의 집값은 정체 상태이며 거래도 뜸한 실정이다.

서울 안에서도 2003년 1월 말 이후 현재까지 강남지역 4개구와 양천구(17.65%) 영등포구(16.22%) 성동구(15.19%) 등 7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집값 상승률이 모두 서울시 평균(13.66%)을 밑돌았다.

특히 강북 도봉 성북 관악 은평 노원 중랑 종로 구로 마포 중구 등은 이 기간 집값 상승률이 현 정부 출범 이후 5월 말까지의 물가상승률(7.39%)을 밑돈다. 실질적으로 집값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거래가 중단돼 이사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서민도 적잖다.

노원구 상계동 동서울공인중개사사무소 김공석 사장은 “중소형 아파트 소유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거래가 중단되고 집값이 떨어진 데다 세금부담은 늘어나는 삼중고에 시달린다”며 “정부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 투기자금 진입을 막아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부동산시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저금리 기조로 인해 풍부해진 투기성 자금이 부동산 시장을 맴도는 한 어떤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을 대체할 주거지를 공급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金顯娥) 부연구위원은 “판교신도시를 강남 수요를 대체할 수준으로 만든다고 했다가 포기함으로써 고급 주거지를 찾는 수요자들이 강남지역으로 ‘U턴’했고, 결국 강남, 분당, 용인의 집값이 오르고 있다”며 “강남에 버금가는 주거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요구도 많다.

부동산컨설팅회사 ‘부동산퍼스트’ 곽창석(郭昌石) 이사는 “정부 정책이 주택 수급보다는 경기조절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부양’과 ‘규제’라는 냉온탕을 오갔고, 이런 학습효과 때문에 현 정부 말기에 가면 모든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팽배해 있다”며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자고나면 1억올라… 입벌어지는 분당-용인 집값▼

“거품이라고요? 물건이 없어서 그렇지, 지금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섰어요.”

8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서 만난 중개업소 사장 K(45) 씨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분당의 아파트 값이 거품이 아니냐는 질문에 코웃음을 쳤다.

그는 “분당은 지금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중개업소에서 보기에도 턱없이 높은 가격인 데도 매물이 나오면 순식간에 팔린다는 것. 그래서 “최고가가 곧 거래가”라고 했다.

인근 중개업소 사장 L(42) 씨는 “한두 달 전부터 아예 거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집을 팔려고 내놨던 사람들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호가(呼價)만 계속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

분당과 용인지역 아파트 값은 지난 두 달여 동안 수억 원씩 올랐다. 3억∼4억 원씩 오른 아파트도 적지 않다. 넓고 새로 지은 아파트일수록 많이 올랐다.

그런데도 지역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여전히 상승 여력이 있다고 말한다. 강남 재건축 규제에 따른 대체 수요에 판교신도시가 강남 대체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감에 따른 ‘풍선 효과’라는 것.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엇갈린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咸英眞) 팀장은 “일부 조정은 있겠지만 지역의 ‘대표 단지’ 가격은 지금 선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닥터아파트 이영호(李榮昊) 리서치팀장은 “현재 형성된 가격은 호가일 뿐 실제 거래는 훨씬 낮은 가격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매수세도 활발하지 않아 거품이 서서히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분당-용인 아파트 올해 시세 변화 (단위:원)
아파트1월4월6월
상록우성 32평형성남시 분당구 정자동4억3000만5억6억5000만
아이파크 57평형성남시 분당구 정자동9억11억14억
건영캐스빌 59평형용인시 죽전동4억7000만6억7000만8억
LG빌리지3차 92평형용인시 성복동7억8억12억5000만
자료:분당 용인중개업소 종합

▼“강남, 盧대통령 지지”인터넷게시판 비아냥 ▼

“강남 분당 용인 주민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 지지로 돌아섰습니다.”

“‘대통령님의 혜안’을 이제야 실감합니다. 그동안 강남 부동산 ‘물 관리’ 하시느라 그렇게 고생하시더니 이제야 결실을 보네요.”

요즘 각 언론사 및 부동산 관련 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런 ‘역설적인’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부동산 값 안정의 타깃으로 내걸었던 서울 강남 등지의 집값이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몇 배나 많이 오른 현실을 빗댄 내용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 아니라 ‘기득권 정당’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실거래가 과세정책으로 서민만 죽어난다’ ‘서민 거주지와 소형 평형은 예전보다 값이 더 떨어졌다’는 글들이 사이트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부동산 문제 때문에 민심이반이 심각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장경수(張炅秀) 의원은 “지역구(경기 안산 상록갑)의 다가구주택은 미분양이 3분의 1에 이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이 오르지 않았지만 인근 신도시는 가격이 폭등해 서민들만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경태(趙慶泰·부산 사하을) 의원도 “극상층과 극빈층은 어떨지 몰라도 중산층과 서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태의 심각을 깨달은 열린우리당은 뒤늦게 10일 ‘부동산세제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분위기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정부 논리에 밀려 부동산 거래세율 인하도 확실하게 관철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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