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키즈]<1>거리낌 없는 사생활 공개

  • 입력 2005년 2월 1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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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와 새로운 문자의 도입, 온라인 카페 및 싸이월드 열풍, ‘폐인’들의 등장, 게임중독….

기성세대는 요즘 10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디지털이라는 변수가 10대와 기성세대 간에 세대차이로 설명이 불가능한 단절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본보는 세대간의 진정한 소통(疏通)을 위해 ‘디지털 키즈’의 세계를 7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

▽숨길 게 없다=재수를 준비하는 유모 씨(19·광주)는 지난달 자신의 미니홈피에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올렸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성적표 그대로 공개했다. 유 씨는 ‘그나마 이 성적이라도 돼서 D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ㅎㅎ’라며 유명 학원에 들어간 것을 ‘자랑’했다.

안양 부흥중 3학년인 최모 양(15)도 자신이 가입한 인터넷 공부 카페에 성적표를 올렸다. 이 카페에는 ‘우’와 ‘양’이 ‘수’보다 많은 중하위권 성적표도 올라와 있다. 회원들은 나쁜 성적이 알려지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

‘1년 사귄 여친(여자친구)이오. 사심 없는 평가 바라오.’

포털사이트에는 10대가 올린 이성친구의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공개는 물론 누리꾼(네티즌)들에게 품평까지 부탁한다.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민경배 교수는 “인간은 본래 표현 욕구가 있지만 타인의 눈을 의식해 이를 억누르고 산다”며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 의사소통 도구인 인터넷이 도입돼 타인의 눈에 대한 의식이 완화되면서 표현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항상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침묵은 금’이라고 여기는 한국의 폐쇄적인 문화에서 기성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10대들이 주도적으로 금기를 깨고 있다는 것.

▽노출 경쟁의 구조=서울 미림여고 1학년 정모 양(16)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홈페이지 방문자 수다. 방문자 수는 요즘 10대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지표다.

정 양은 “방문자 늘리기 경쟁이 치열해져 일기장이나 사진, 동영상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 내밀한 정보를 자꾸 공개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김양은 소장은 “오픈 문화는 기업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생활 노출을 부추기면서 도를 넘어서기도 한다”고 진단한다. 자기표현에 훨씬 관대한 서구보다 한국의 사이버 공간 노출 수위가 더 심한 것이 그 증거.

요즘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방문자가 많을수록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사람들의 시선 잡기 경연장으로 유도해서 방문자와 회원을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이다.

▽1인 방송국시대의 개막=광고기획사 화이트넥스트의 강수현 이사는 노출문화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본다. 스스로가 기자, PD, 작가, 탤런트 1인 4역을 할 수 있는 ‘1인 방송국 시대’가 열리면서 첫 단계로 자신을 소재로 삼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여중생 김모 양(16·경북)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100곡이 넘는 팝, 일본 애니 뮤직 비디오 외에도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올린다. 인터넷에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아예 ‘1인 방송국’처럼 꾸며 자신이 만든 동영상을 올리고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10대들이 늘고 있다.

강 이사는 “표현 욕구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기성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디지털 키즈들이 가장 먼저 1인 방송국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운자가 음성보다 편하다…왜?▼


▽①안녕. ②안녕~ ③안녕!

세 문장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기성세대다. ①은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다, 또는 너랑 말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 ②는 친한 관계임을 드러내는 일상적인 인사. ③은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표현이거나 기분이 매우 좋다는 뜻도 있다.

▽문자의 진화=1980년대 중반 PC통신이 시작되면서 키보드를 두드려 대화를 해야 하는 누리꾼(네티즌)들은 문자를 압축해서 쓰기 시작했다.

“토욜(토요일)” “방가(반갑다)” “어솨요(어서 오세요)” 등 수많은 단어가 압축돼 사용됐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채팅과 문자 메시지가 일반화되면서 문자는 또 한번 ‘진화’한다.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는 의사소통에서 부족한 감정표현을 전달하기 위해 감정(emotion)과 기호(icon)가 합성된 이모티콘(emoticon·그림말)이 등장한 것.

^_^;(웃음) ㅜ_ㅜ;(슬픔)처럼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던 이모티콘은 수천 개에 이른다. 이모티콘을 모르고 채팅을 하면 10대는 “화났느냐”고 묻거나 아예 상대를 해 주지 않는다.

‘s(*^-^*)z’(두 팔을 허리에 올린 채 “에헴” 하고 말하는 표정)처럼 그림과 문자를 결합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복합형 이모티콘’의 사용도 크게 늘었다.

경기 고양시 화정중 2년 박모 양(14)은 “문자를 읽고 쓰는 대신에 우리는 그리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문자의 새로운 기능 발견=기성세대에게 ‘문자’는 ‘말’보다 예의와 격식을 갖춘 의사소통 수단. 10대는 그 반대다. ‘말’보다 ‘문자’가 편하다.

서울 개포중 3년 최모 양(15)은 “친구끼리 직접 만나서는 말하기 곤란한 내용도 채팅에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한 번 더 생각해서 답을 할 수 있어 문자가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10대는 문자의 ‘비동시성(非同時性)’을 사랑한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즉각 응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자는 이런 부담이 없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지난해 중고생 12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8.3%가 ‘음성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더 많이 쓴다’고 답했다. 10대들이 얼마나 문자메시지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인터넷 포털 ‘버디버디’는 ‘쪽지’ 서비스를 선보여 10대가 가장 좋아하는 인터넷 서비스 중 하나로 떠올랐다. 쪽지 서비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처럼 쪽지를 받은 상대방이 읽고 싶을 때 확인하고 답하는 서비스.

일반적인 메신저 서비스와는 달리 대화 상대방에게 ‘대답을 기다린다’는 압력을 주지 않는다. 인터넷 서비스 ‘버디버디’의 문상헌 과장은 “10대는 메신저를 이용한 실시간 문자 대화마저 부담을 주는 ‘직접 대화’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자가 말까지 바꾼다=10대들만의 문자는 ‘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울대사대부설중 국어교사 구본희 씨(31)는 “학생들이 말에서도 ‘샘(선생님)’ ‘방가방가(반갑다)’ 등 채팅용 단어를 쓰는 것은 물론 말투까지 뚝뚝 끊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채팅용 말투는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능력이나 논리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악영향을 준다고 교사들은 우려한다.

문화평론가 변정수 씨의 의견은 다르다. 그는 “언어는 변화하는 것이 본질”이며 “최근 10대들의 언어생활은 디지털 시대에 맞도록 언어가 진화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이병기 기자(팀장) eye@donga.com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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