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기자본이 高유가 주범”

  • 입력 2004년 5월 17일 18시 07분


“투기자본이 배럴당 4∼8달러를 가져가고 있다.”

최근 알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영국과 미국의 원유 선물(先物)시장에 유입된 투기자본을 고유가의 한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국내에서도 원유 선물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 말부터 미국과 영국의 원유 선물시장에는 석유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국제 투기자본이 대거 가세한 상태. 석유전문가들은 현재 선물시장 참가자의 30%가량을 투기꾼으로 보고 있다.

나이미 장관의 주장대로라면 국내 소비자는 물론 세계 소비자가 석유제품을 사면서 억울하게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투기자본에 돈을 건네주는 셈이다.

나이미 장관의 주장에 대해 석유전문가들은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원유 선물시장의 존재가 석유가격의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주장과 ‘현재의 석유시장은 꼬리(선물시장)가 몸통(현물시장)을 흔드는 격이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투기꾼의 긍정적인 기능을 인정하는 전문가들은 주로 경제학자들.

원유 선물시장을 연구해온 한양대 경제학과 윤원철 교수는 “원유 선물시장 역시 다른 상품의 선물시장이나 증권 선물시장처럼 메인 상품의 장기적인 가격 안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정보경제학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선물시장의 가격 변화는 원유 공급자나 수요자에게 일종의 신호 역할을 한다.

미래의 예상되는 가격에 맞추어 공급자는 유전을 더욱 개발하거나 원유 공급을 줄이고 소비자는 석유 소비를 늘리거나 줄인다는 것.

최근 투기자본이 돈을 쉽게 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가격 하락에 대한 큰 위험부담을 지는 것에 대한 대가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의 관계자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처 구자권 팀장은 “원유시장은 본질적으로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내린다고 해서 수요와 공급이 탄력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경제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런 특성을 간파한 투기자본이 선물시장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SK 리스크매니지먼트팀 주홍서 과장도 “저금리로 갈 데없는 금융자본이 대거 선물시장에 몰리면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졌다”며 “선물시장의 가격이 현물시장의 가격을 주도하면서 투기자본이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생상품을 주로 담당하는 증권연구원 손중훈 연구위원은 “선물시장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맞지만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가격의 변동성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다”며 “최근 원유 선물시장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 결과를 가지고만 판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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