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재계 신기술-경영혁신 '웃고'…비자금-분식회계 '울고'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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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올해에도 기업 인사들의 부침(浮沈)은 어김없이 이뤄졌다.

올해 9월 29일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70nm(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초미세 공정기술을 적용한 4기가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이로써 1999년 이후 4년째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를 매년 2배로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2배로 증가한다는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의 ‘메모리 신성장론’, 일명 ‘황의 법칙’이 다시 입증된 것이다.

디지털카메라 등에 쓰이는 플래시메모리가 반도체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 삼성이 플래시메모리를 기반으로 ‘반도체 제2도약’을 선언했다.


LG전자 김쌍수(金雙秀) 부회장도 돋보였다. 김 부회장은 10월 1일 LG그룹의 계열 분리가 이뤄지면서 구자홍(具滋洪) 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자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1969년 평사원으로 출발해 34년 만에 대표이사가 된 것. 김 부회장은 줄곧 경남 창원 공장에서 생활했던 현장 경영인으로 대표이사가 되면서 처음 서울 생활을 하게 됐다. LG전자에 경영혁신 운동인 ‘6시그마’ 운동을 확산시켰고 8월 청와대에서 경영혁신을 주제로 초청 강연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국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뉴스 가운데 하나는 할인점의 매출이 백화점의 매출을 처음 앞서게 된 것. 특히 이마트의 독주가 두드러졌는데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신세계 구학서(具學書) 사장이다. 유통업계의 변화를 일찌감치 꿰뚫어 보고 외환위기 이후 과감하게 할인점에 집중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구 사장은 윤리경영을 특히 강조해 ‘윤리경영의 전도사’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옛 대우 계열사들의 부활도 빼놓을 수 없는 뉴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대우조선해양의 정성립(鄭聖立) 사장이다. 대우조선은 2001년 8월 대우계열사 가운데 처음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올해 조선시장이 호황을 보이면서 상반기에만 매출 2조310억원, 2710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렸다. 정 사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0월 주총에서 3년 임기의 사장에 다시 선임됐고 ‘무역의 날’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박병엽(朴炳燁) 팬택&큐리텔 부회장은 2000년 인수한 현대큐리텔을 올해 상장시키면서 거부(巨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식 평가액이 3000억원을 넘게 돼 국내 기업인 가운데 15위의 자산가로 떠오른 것. 경영실적도 좋아 카메라폰이 히트하면서 내수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3강’ 체제를 완전히 굳혔다. 최근에는 전통 제조업체인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공식선언해 결과가 주목된다.

윤창번(尹敞繁) 하나로통신 사장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에서 외자유치를 앞둔 하나로통신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LG와 임시주총 표대결을 앞두고 대대적인 위임장 확보전을 벌여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례를 만들어냈기 때문. 위임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노조와 경쟁사, 정보통신부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금융시장에선 외국계 펀드들의 입김이 유난히 강했다. 특히 SK의 2대 주주로 올라선 소버린자산운용의 오너 리처드 챈들러와 크리스토퍼 챈들러 형제가 관심의 대상. 뉴질랜드 출신으로 모나코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 형제는 신흥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인 후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시켜 주가를 올려 차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투자해왔다고 한다.

국내 금융인 가운데에선 최근 정부 지분 매각으로 완전한 민영 은행으로 다시 태어난 국민은행 김정태(金正泰) 행장이 돋보였다. 그의 경영장악력이 더욱 강화될 전망. 하지만 2001년 11월 국민-주택 합병은행장 취임 이후 공격적인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카드 영업에 나서면서 가계부실의 일부 원인을 제공했다는 책임론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현대의 법통을 잇는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던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운의 기업인’으로 불리게 됐다. 정 회장의 부인 현정은(玄貞恩)씨는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취임 이후 시숙부 정상영(鄭相永) KCC명예회장과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대결을 벌이며 관심을 끌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기업의 회장까지 올라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불렸던 손길승(孫吉丞) SK 회장은 계열사 분식회계와 대선 비자금 문제가 터지면서 결국 전경련 회장에서 물러났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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