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이번엔 제대로 만들자]<2>베드타운 이제 그만

  • 입력 2003년 11월 4일 18시 54분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 1차로 50만평 규모의 LG필립스 산업단지가 2005년 4월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단지 내에 6800여평만 주거단지로 결정돼 있을 뿐 현재로선 인근에 만들어질 파주신도시와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경기 화성시 장덕동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도 사정은 마찬가지. 석박사 이상의 고급 인력 6000여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회사 차원의 소규모 사원주택과 기숙사만 있을 뿐 인력 공급과 주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배후단지는 없는 실정이다.

산업단지와 신도시가 연계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다.

지금까지의 신도시는 집값을 잡기 위해 급조되다 보니 중장기적으로 산업시설과 연계를 이룰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신도시는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고용 기회를 제공할 수 없어 거대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해버렸다. 분당 일산 등 신도시 주민 10명 중 4명이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자리 없이 신도시 없다=전문가들은 앞으로 신도시를 만들 땐 직장과 주거가 공존하는 ‘직주근접(職住近接)’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자리 없는 신도시는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확고한 정책목표를 가져야만 과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고 실질적인 자족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파주 LG필립스 산업단지의 경우 승용차로 불과 20분 거리인 파주신도시나 인근에 조성 중인 교하신도시를 배후단지로 상정할 수 있다. 신도시에 공장 직원들을 위한 주거용지를 확보하고 양측을 잇는 도로망을 갖춘다면 고용과 주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국토연구원 지역도시연구실 민범식(閔範植) 연구위원은 “수도권정비법 때문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기 어려운 수도권의 신도시 지역에는 아파트형 공장이나 첨단 도시형산업, 또는 금융산업 등을 유치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남 창원시의 경우 산업단지와 함께 배후에 주거단지를 조성해 자연스럽게 신도시를 형성했다. 또 경기 안산시의 경우도 반월공단의 배후단지로 주거단지가 개발됨으로써 ‘계획도시’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입안단계에서 기업 요구 반영하자=신도시에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계획단계에서부터 기업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 테미 오버비 수석 부회장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면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는 환경을 갖춘 주거단지(신도시)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더 나아가 영어가 통용되는 수준의 병원, 학교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대진대 장석환(張碩桓) 교수는 “근로자들도 좋은 여건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자신도 근거리 통근을 선호하는 만큼 기업이 신도시 인근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며 “신도시 입안단계에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기업 유치활동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도시, 기업이 주도하자=정부가 신도시 계획을 세우고 산업을 유치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아예 기업이 신도시 개발의 이니셔티브를 쥐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이 자신의 투자계획에 맞춰 배후도시를 개발하도록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차원으로 신도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정전(李正典) 교수는 “정부가 판을 벌이고 기업더러 들어오라고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업이 먼저 신도시 개발안을 짜도록 한 뒤 이 방안을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검증을 거쳐 확정하고 정부는 지원만 하는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000만평 규모의 ‘자족적 기업도시’ 개발을 추진하자고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고양·파주=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선진국 모범사례▼

영국의 신도시 밀턴케인스는 런던에서 북쪽으로 80km나 떨어져 있지만 산업과 연계한 개발 덕분에 자족도시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모빌오일, 벤츠 등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3500여개의 기업이 자리 잡은 이 도시는 실업률이 1.5%에 불과하다. 주민들의 생활수준과 만족도도 영국 최고 수준.

프랑스 서북쪽 30km 지점에 자리 잡은 세르주 퐁투아즈는 1969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수용인구 30만명으로 조성된 신도시다.

면적은 일산신도시(경기 고양시)의 약 5배인 2420만평. 개발 초기 1만5000개였던 일자리는 98년 8만4000개로 늘어나 주민 17만90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신도시 내에 직장을 갖고 있다.

도시이름보다 대학이름으로 유명한 영국 케임브리지도 대학이라는 자족기능을 갖춘 신도시다.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는 IBM과 오라클, 애플, 인텔 등 정보통신과 관련된 세계적 기업이 입주해 도시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추진 중인 판교신도시(경기 성남시)에 20만평의 벤처단지가 예정돼 있으나 기업 유치활동에 앞서 면적축소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해배출 우려가 없고 서울 강남권으로의 접근성이 좋아 기업들이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지만 수도권 억제정책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먼저 제기된 탓이다.

일본의 아키다, 스위스의 바젤 등은 의료산업을 유치했고 일본의 도요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관련 산업을 유치해 자생력을 갖추는 등 산업을 특화해 성공했다.

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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