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 ´2002 경제´]⑧ 대기업 총수들 발걸음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7시 56분


“성과가 좋을 때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5∼10년 뒤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 중장기 전략과 목표를 세우자.”(이건희 삼성 회장, 4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의 과제가 생존이었다면 이제는 새롭게 비상하는 LG의 모습을 준비해야 한다. 고객이 신뢰하는 일등 LG를 달성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구본무 LG 회장, 임원들과의 2002 신년 하례모임)

2002년은 대기업 총수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부실하고 불투명한 경영이 지탄을 받고 재벌개혁 목소리가 커지면서 총수들의 활동은 한때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그러나 올 들어 주요 그룹들이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올린 데다 중국이라는 경쟁자가 급부상하면서 미래전략을 지휘하는 총수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올 들어 여러 차례 직접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면서 핵심 인재 확보와 준비 경영을 강력히 주문했다. 구본무(具本茂) 회장도 국내외 사업장을 부지런히 방문해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해외 활동도 두드러졌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미국 중국 등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세계박람회 유치를 지휘하기 위해 올 들어 30여개국, 지구 네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누볐다. 손길승(孫吉丞) SK회장은 중국과 일본을 각각 5∼6차례씩 방문해 동북아 진출 강화를 모색했다.

총수의 리더십 부활이 두드러졌던 것. ‘법적 근거 없는 총수의 경영간여’에 부정적이던 공정거래위가 그룹 비서실의 존재를 묵인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도 큰 변화.

이 와중에 현대상선이 분식회계를 통해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문제가 불거지고, SK글로벌이 SK증권에 손실보전을 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낡은 경영행태가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오너 총수를 구심점으로 해 기업의 장기전략을 만들어가는 한국 기업의 장점은 해외에서도 부러워한다”며 “미래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총수의 긍정적 역할은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준기(金晙基·회사법 전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총수들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검증 안된 2, 3세에게 기업을 대물림하는 등 병폐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대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재벌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밝혀 총수의 경영권 문제는 내년에도 경제계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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