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中企로 간 ´워크맨신화´ 구로키 前 소니사장

  • 입력 2002년 11월 21일 18시 25분


“한마디로 ‘섬싱 디퍼런트(something different)’. 뭔가 다른 것을 만든다는 집념 아래 명품을 탄생시키는 것, 바로 여기에 중소기업의 힘이 있습니다.”

일본 소니사의 명품 ‘워크맨’을 디자인해 2억대 판매 기록을 세운 ‘워크맨 신화’의 주역 구로키 야스오(黑木靖夫·71·사진)는 불경기일수록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힘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일 오후 그를 만난 곳은 한적한 시골인 도야마(富山)현에 위치한 종합디자인센터였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사장직을 끝으로 33년간의 소니 생활을 접고 10년 전 홀연히 도쿄(東京)를 떠났다.

이렇다 할 산업도, 연고도 없는 도야마까지 내려온 것은 나카오키 유타카(中沖豊) 지사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자”는 ‘온리 원(only one)’ 정신을 외치며 중소기업 전용 디자인센터 소장으로 그를 초빙했기 때문.

그는 기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백발의 나이를 잊은 듯 “디자인 전략을 살리면 중소기업에 충분히 살 길이 있다”며 청년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이런 그의 열정과 노력으로 독특한 상품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월드컵대회 때 시위 진압용 방패로 사용된 뒤 한국 독일 영국 등으로부터 구매 교섭이 쇄도하는 ‘투명 방패’가 대표적.

이를 개발한 회사 ‘난와’만 해도 디자이너인 미나미 유타카(南豊·41)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7명뿐이다. 디자인센터의 도움으로 7년 걸려 개발한 이 방패는 앞을 훤히 볼 수 있어 안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데다 가벼우면서도 총탄도 뚫지 못할 만큼 튼튼하다. 일본의 방위청 자위대 경찰청 민간경비회사 등에서 주문이 쏟아져 올해 예상 매출액이 3억엔(약 30억원)에 이른다.

디자인센터의 도움을 받아 개발된 중소기업 제품 중에는 손쉽게 빼도록 구멍을 낸 전기 콘센트, 용수철로 만든 옷걸이 등 셀 수 없이 많다. “사원이 18만명인 회사의 사장을 할 때보다 요즘이 더 재미있습니다.”

작은 도움만으로도 금방 성장하는 중소기업 이야기로 신이 난 그에게 경영철학에 관해 묻자 “‘노(NO)’ 소리가 없는 ‘1인 지배 시스템’을 가진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다음달 초 삼성전자의 요청으로 방한해 강연할 예정이다. 방한을 앞두고 한국의 자동차 업계에 대해서도 고언을 했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일본에 뒤지자 ‘일본 베끼기’를 하다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요즘 한국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100m 떨어진 곳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그런 고유 모델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구로키의 말·말·말▼

▽소니에 있을 때 소니 회장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며 ‘이 사람은 소니에서 내가 하는 말을 가장 안 듣는 사람’이라고 하곤 했다(1998년 일본의 한 잡지와 인터뷰).

“일사불란한 회사는 군대”

▽마치 고교야구선수들이 입장식 할 때처럼 회사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회사는 더 이상 회사가 아니고 군대나 경찰이다(1998년 일본의 한 잡지와 인터뷰).

“지금부터 뭘 할지가 중요”

▽인간이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이냐에 따라 정해진다(2000년 교토의 한 대학 초청강연에서).

“조금 다르게 조금 새롭게”

▽상품기획의 기본은 ‘조금 다르게’ ‘조금 새롭게’이다(저서 ‘Mr.소니 기획의 비밀 소니스타일을 훔쳐라’에서. 2002년 9월 홍익출판사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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