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임직원이 횡령한 돈 상여금간주 회사에 세금부과 부당"

  • 입력 2002년 9월 10일 06시 50분


회사 소유주가 아닌 고용 임직원이 횡령한 돈을 상여금으로 보고 국세청이 회사측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횡령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회사측에 세금 납부 책임까지 물어온 과세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어서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회사측이 대표이사 등을 통해 돈을 횡령해도 과세할 방법이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어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주목된다.

대전고법 특별부(민일영·閔日榮 부장판사)는 지난달 말 프랑스계 대형 할인업체 까르푸가 “회사 대표가 횡령한 돈을 상여금으로 보고 근로소득세 250억여원을 징수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대전세무서장과 대전 서구청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가 근로자의 소득에 대해 원천징수 의무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 임직원이 횡령한 돈을 이들에 대한 상여금으로 처리할 경우 피해자에 불과한 회사에 횡령으로 인한 피해액뿐만 아니라 범법자가 내야 할 소득세까지 대신 납부하게 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는 조세법률주의나 실질과세의 원칙, 원천징수제도의 존재 의의 등에 비춰볼 때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회사 소유주나 실질적 경영자가 횡령한 경우 회사측이 그 범행을 알게 됐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낮고 피해액을 회수할 의사가 없어 사실상 이를 용인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과세는 정당하다”며 “그러나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지 않는 고용 대표이사는 다른 고용 임원과 다르게 취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세청은 징수액 250억여원에 이자를 합쳐 300억원 정도를 까르푸에 돌려줘야 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회사 돈이 임직원에게 흘러갔다면 소득세를 부과해 과세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굳어질 경우 회사가 대표이사 등을 통해 회사 돈을 빼돌리고 횡령이라고 주장해도 과세할 방법이 없게 된다”며 “상고를 통해 대법원에서 다투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별로 일일이 횡령인지, 회사와 임직원이 짜고 돈을 유출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만큼 일단 과세 후 회사가 구상권 행사 여부를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까르푸 사건▼

98년 한국 까르푸사 고문인 헥터 파인스(49)가 사장 베르나르 엘루아, 부사장 김태영씨 등과 공모해 국내 투자금 1540억원 중 340억여원을 해외로 밀반출한 국제사기극. 파인스씨 등 주범들이 해외로 도피해 현재 검찰 수사는 중단된 상태다.

까르푸사는 국세청이 다음해 250억여원의 세금을 부과하자 “횡령행위를 용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 입장에서 민형사상의 모든 법적인 대응에 나섰다”며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는 국세청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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