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약인가 독인가]<上>흔들리는 '신용사회'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49분


《신용카드 발급이 급증하면서 각종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긋고 보는’ 카드의 유혹에 빠져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신용카드 거리 및 방문 모집을 금지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용카드의 실태와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 해법은 올바른지 등을 3회 시리즈를 통해 점검해본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 외국 언론들은 한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신용카드 때문에 한국경제가 큰 부담을 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카드대출로 늘어난 가계 빚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급증하는 신용카드와 신용불량자〓16일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3월 말까지 25개 신용카드사 회원들의 카드사용액은 결제, 할부금융, 현금서비스 등을 합쳐 전년 동기보다 66조5417억원(73.7%) 증가한 156조8389억원으로 추정된다.

1·4분기(1∼3월)에 신용카드를 통한 현금대출 이용액은 100조114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8조5800억원(62.7%) 늘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신용카드 대출이 전체 가계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말 8.8%에서 2001년 말 19.7%로 급증해 금리가 오르면 가계 파산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신용카드 수는 3월 말 현재 9605만장으로 작년 3월 말보다 3300만장(52%)이나 증가했다. 이를 경제활동인구(2229만명)로 나눠 보면 1인당 4.3장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수는 1999년 말 1.8장, 2000년 말 2.6장, 작년 말 4.0장 등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경기회복에 힘입어 부도로 인한 신용불량자는 줄고 있는 반면 신용카드 대금을 체납해 등록되는 신용불량자는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는 모두 247만9421명으로 3월 말보다 2만4368명(0.99%) 늘었다. 이 가운데 10대 신용불량자도 1만1000명이나 있었고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20대도 42만5000명이나 된다.

신용카드 사용액을 제때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3월 말 63만4983명에서 4월 말 67만3869명으로 한 달 사이에 4만명가량 증가했다.

▽회원모집 실태와 뒤늦은 제동 걸기〓카드사들은 일부 회원에게 돈을 떼이더라도 연회비, 수수료, 연체이자 등으로 큰 수익을 얻기 때문에 경품까지 내걸고 치열한 회원모집 경쟁을 벌인다.

카드사의 모집인들은 젊은 층이 많은 대학이나 행사장 주변은 물론 대로변에까지 가판대를 설치하고 고객의 신용에 대한 평가없이 신청만 하면 카드를 발급해 주는 속칭 ‘묻지 마’ 방식으로 회원을 모으기도 했다. 심지어 카드를 만들면 카드사에서 받은 수수료의 일부를 신청자에게 현찰로 주기까지 했다.

카드 발급이 급증한 것은 정부가 탈세를 막고 세원(稅源)을 늘리기 위해 세제 혜택까지 주면서 카드 사용을 권장한 데다 경기 회복을 위해 저금리 기조와 함께 내수 진작책을 펴자 분수를 넘을 정도로 소비심리가 확산된 것도 요인이다.

금융당국은 급증하는 신용카드 대출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카드사에 대해 현재 63% 수준인 현금대출 비중을 2년 안에 50% 이하로 줄이도록 했다.

소득이 없거나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은 미성년자에게 카드를 발급한 일부 카드사에 대해 최고 2개월까지 신규회원 모집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카드사들도 뒤늦게 미성년자에게 카드를 발급하지 않거나 신용한도를 까다롭게 심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금융협의회에서 “급증하는 신용카드 대출은 금융부실의 위험요인인 동시에 가계의 불안 요인”이라며 “고금리 신용카드 대출을 저리의 은행 대출로 전환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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