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美테러사태는 기회"…해외진출 박차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9시 01분


99년 1월 경기도 검단산 정상. 영하 20도의 강추위를 뚫고 정상에 오른 대한재보험 간부직원들에게 박종원(朴鐘元 당시 55세·사진) 사장이 독주를 한잔씩 따랐다. 토요일 오후 출발을 강행한 산행이 정상으로까지 이어지리라곤 반신반의했던 터.

“산행을 내가 이끌었듯 조직의 완급조절은 내가 한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직원들은 왜 박사장이 매서운 추위속에서 산행을 고집했는지 그제야 알아차렸다. 2, 3월 손해보험사와의 ‘전투’(계약갱신을 일컫는 말)를 앞두고 정신무장을 시켰던 것.

해병대근무에 재정경제부를 거친 박사장의 사내 일화는 무척 많다. 해마다 열리는 체육대회는 그의 독무대. 관중석에서 응원만 했던 부장 이상급 사원들을 전부 끌어내 축구 배구 달리기를 시킨다. 물론 그도 풀타임을 뛰는 스타플레이어다. 8월 무더위속에서 선발된 신입직원들은 박사장을 따라 서울 근교 청계산을 5시간이나 헤매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미국 테러사태로 재보험 시장은 위기이자 기회를 맞았습니다. ‘물건’만 잘 잡으면 올라간 보험료율 덕택에 수입이 마냥 늘어납니다.”

박사장은 최근 세계 보험업계의 재앙으로 불리는 대참사 속에서 또다른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남미출장을 다녀왔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은 개도국시장을 저인망으로 훑는 영업방식이 그의 특기.

대한재보험은 그가 취임할 무렵인 98년 상반기 결산(9월)에서 27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외환위기 전후에 사들인 보증보험의 물건에 물려 재보험사까지 무너질 판이었다. 박사장은 이를 불과 반년만에 37억원 흑자로 돌려놓았다. 이제 그를 ‘재경부 낙하산’으로 부르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박사장은 취임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 상사-부하들의 다면평가를 도입했다. 이를테면 과장급을 ‘정리’하면서 부장과 대리의 의견을 취합하는 방식. 그러나 정작 실무진이 올린 ‘살생부’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고 비서실 관계자는 털어놓았다. 정실을 막기 위해서였다.

재보험은 올해 사상 최대의 순익을 기대하고 있다. 보험료율이 오른 데다 여름 풍수해 등 지상이변과 교통사고 등 ‘인재’가 크게 준 덕택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지만 세계시장에서는 선진업체를 따라가기가 아직 버겁다. 우리 경제규모에 맞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책임이 박사장과 재보험에 안겨진 셈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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