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동안 각 업종에 걸쳐 170여개의 B2B업체가 출범을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사이버 시장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출발만 요란했지 진척이 없는 것이 한국 B2B의 현 주소.
액센츄어(구 앤더슨 컨설팅) 김희집 전무는 “B2B가 3년 후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기업들은 냉정한 사전조사나 준비작업도 없이 뛰어든 감이 있다”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문제점을 점검할 때”라고 말했다.
▽출발만 요란했다〓작년에 20여개 업종에 170여개의 B2B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출범했거나 출범을 예고했다. B2B는 주로 대기업이 주체인 점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도 빠른 흐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현재 각 기업의 인터넷을 통한 구매비중은 1.8%, 판매비중은 1.2%에 불과하다. 특히 거래규모가 커 B2B의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됐던 조선 화학 자동차 중공업 철강 등 주력업종의 B2B 거래는 거의 없다.
▽B2B 왜 안되나〓기업간 전자상거래는 ‘개방성’이 핵심. 그러나 국내 주요산업은 각 재벌의 계열사가 하청업체를 수직계열화를 통해 지배하므로 다른 기업의 하청업체들의 B2B 참여가 어렵다.
산자부 정재훈 과장은 “각 메이커가 일정기준을 갖춘 모든 하청업체에 참여를 개방해야만 전자상거래의 효용이 극대화된다”며 “국내 대기업, 예를 들어 자동차 업체는 하청업체가 다른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 기존의 거래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의미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급업체나 판매업체가 ‘햇빛(투명성)’을 꺼리는 것도 문제. 현대중공업 등 조선 5개사가 포항제철로부터 구입하는 철강가격은 각기 다르고 가격자체가 비밀이다. B2B가 도입되면 이 가격은 공개될 수밖에 없다.
산자부 권평오 과장은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은 자재를 대량 구입하기 때문에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면서 “온라인에서 이런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싫어해 B2B 참여를 꺼리는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구매담당자들은 노골적으로 B2B를 거부한다. 화학업체들이 참여한 B2B도 각 업체 사장들은 “온라인 거래를 하라”로 재촉을 하지만 정작 구매담당자들은 부정적이다.
이외에도 △각 제품이 전자상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가 돼 있지 않고 △중소업체들의 정보화 마인드 부족 △최고경영자의 정보화마인드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