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선언 나오기까지]물밑 주도권다툼 치열

  • 입력 2000년 12월 22일 22시 58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마침내 합병에 합의했다. 아직 노조반발이라는 걸림돌이 남아있긴 하지만 대세를 되돌리기는 힘든 상황. 초여름부터 물밑에서 은밀히 진행돼온 양 은행의 합병 과정을 합병과정에 간여했던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재구성한다.

“주택은행은 최선이 아니라 유일한 합병파트너다.” 은행의 갖가지 짝짓기 구도가 금융가에 어지럽게 유포되던 6월의 어느 날. 골드만삭스 미국본사에서 날아온 지침은 간단하고 단호했다. ‘주택은행 아니면 안 된다’는 것.

국민은행측이 최대주주(지분 11.1%)인 골드만삭스의 입장을 배려해 ‘최선이지만 좀 어려운 1안〓주택은행, 차선이지만 현실적인 2안〓신한은행’의 복안을 통보하자 바로 되돌아온 답변이었다. 국민 측은 난감했다. “국민―주택 합병은 시너지효과가 없으며 대량감원 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일축해온 터였다. 어쨌든 이 때부터 국민은 주택을 마음에 둬왔다.

골드만삭스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들의 목표는 경영권 장악이 아니라 투자수익 극대화이고 주가부양에는 주택과의 합병이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합병 논의가 본격화한 데는 정부의 드라이브가 크게 작용했다”고 관련 당사자들은 말한다.

“국민은행은 정부와 주택은행의 눈치를 봐가며 신한 한미 하나에 잽을 날렸다. 변죽울리기였다. 그러나 신한 한미 하나는 국민을 합병파트너로 생각조차 않았다. 합병되면 용해될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김상훈 국민은행장은 10월말 드디어 주택에 ‘지주회사 방식으로 합병하자’고 제의하게 된다. 타이밍을 결정한 것은 정부였다.”

주택의 반응이 의외였다. 주택이 ‘아예 본격합병을 하자’고 역제의를 해온 것. 주가상승, 뉴욕증시 상장 등으로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제의와 역제의 과정에서 양 은행의 사전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다고 전해진다.

두 은행의 행장들은 11월말 이후 네댓 차례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합병은행명, 합병비율, 합병은행장 등 핵심쟁점에 대한 견해차가 너무 컸다. 국민은 시가총액과 자산규모를 근거로 흡수합병의 의중을 드러냈고 주택은 주가나 시장의 평가를 들어 대등합병을 요구했다.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골드만삭스와 매킨지(주택은행의 대주주인 ING베어링의 대리인)를 개입시키기로 한 것이 12월 8일경. 여기까진 좋았다. 진전은 더뎠지만 외국인 대주주들과 합병은행장의 의지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단은 11일 오전 생겼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이날 경제장관간담회에서 두 은행의 합병추진 사실을 흘려버린 것. 어쨌거나 합병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증권가나 외국인투자자들도 ‘이렇게 빨리’ 하며 놀라워했다는 후문.

하지만 이 발언은 은행원들의 반발을 낳았다. 격분한 국민은행 노조는 행장을 38시간동안 감금했다. 골드만삭스 인수합병(M&A)팀은 15일 한국을 떠났다.

정부관계자들의 ‘한 건 올리겠다’는 조급한 성과주의와 시한을 정해두고 밀어붙이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이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게 금융가 여론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 내부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이렇게 전한다.

“관료 한사람의 실언으로 ‘월가의 여우’라는 골드만삭스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M&A팀 철수는 노조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제스처였다. 꼭 한국에 있어야만 일이 되는 것은 아니잖은가?”

국민 주택 두 은행의 행장은 마침내 22일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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