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어쩌다가…머리싸맨 政街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59분


《정치권이 ‘경제위기론’을 더 이상 가설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이 1차부도를 맞는 등 ‘위기의 조짐’이 보다 뚜렷해지자 여권에서는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 한다”는 경고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야권도 경제위기를 의식하고, 대정부공세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여권▼

경제 얘기만 나오면 “나쁘기는 하지만 위기는 아니다”는 ‘모범 답안’을 되뇌던 여권 관계자들도 31일엔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민주당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98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받은 느낌은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내력으로 구조조정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영국도 IMF사태 이후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의장은 “우리는 2년반만에 ‘개혁 피로’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이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앞으로도 5∼6년은 더 가야 한다. 그 기간 중에 좋은 기술인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고 ‘좀 더 참고 견딜 것’을 강조했다.

위기 수습을 위한 해법도 같은 맥락이다. 즉 개혁 추진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권의 기본입장이다.

민주당 정세균(丁世均)정책조정위원장은 “지금 우리 경제는 ‘수혈’하는 정도로는 회생이 어렵다”며 “다른 살까지 썩어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당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의장도 “앞으로 기업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 것을 내놓는 자구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대는 당장 서산간척지라도 팔아서 부채를 갚아야 한다. 간척지 조성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 반값에 팔 수 있느냐고 하지만, 지금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야권▼

한나라당은 이날 정부측에 대해 조속한 사태 수습을 요구하면서도 동아건설 자금지원 중단과 현대건설 1차 부도 등 직접 현안에 대해서는 자극적인 정치공세를 자제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논평에서 “두 건설회사의 부도는 건설업계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신호탄으로 국가경제에 빨간불을 점화시킨 것”이라며 “과감한 대책으로 하청업체의 연쇄도산을 막고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대변인은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무분별하고 무계획적인 대북지원이 부도위기의 한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며 “정부가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고 비호하다 해결 시기를 놓치면 큰 일”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은 또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과 리타워텍 주가조작의혹에 대해선 정부 여당의 도덕성을 거론하면서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이날 당3역회의를 주재하면서 “금융감독기관은 상호견제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현 정권이 금융감독기관을 통합해 문제가 생겼다”며 금감원 해체를 촉구했다.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도 “금감원에 대한 국민불신이 심각해 이미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고 가세했다.

장광근(張光根)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도덕 불감증에 빠진 정권 하에서 해괴망측한 일들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에 재경부 국장, 민주당 의원 등이 깊이 개입했다는 소문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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