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벤처정책 거품-부패 키웠다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55분


‘정현준 게이트’를 둘러싼 벤처기업―정 관계인사―사채업자와의 ‘3각 커넥션’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연계고리는 ‘과감했지만 엉성했던’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빚어낸 부산물이다. 특히 정치권과 사채시장의 검은 돈이 감독당국의 눈을 피해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검은돈 물만난듯 벤처투자▼

▽자금출처조사 면제는 무리수〓사설펀드를 통한 벤처기업과 검은 돈의 유착관계는 기본적으로 국세청의 자금출처조사 면제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97년말 금융실명제 대체입법을 만들면서 98년말을 시한으로 ‘중소기업(벤처기업)에 직 간접적으로 출자하는 자금은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한다’는 특례규정을 두었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금융기관에 부실채권이 급증해 기업대출 여력이 없어진 상태. 이에 따라 연쇄부도사태가 발생하자 사장(死藏)된 지하자금을 양성화시켜 벤처기업을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조치로 검은 돈은 제철을 만난 듯 투자조합이나 사설펀드를 결성해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외부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정치권 비자금과 사채시장 자금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벤처기업투자에 열을 올렸다. 이들은 작년부터 코스닥 활황으로 수백억원을 챙겼고 국세청 조사도 받지 않아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무분별한 각종 지원〓정부는 2005년말까지 벤처기업 4만개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온갖 지원제도를 내놓았다.

작년 5월에는 소득금액의 50%까지 손금으로 산입해 사업손실준비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해 법인세 감면혜택을 줬다. 창업자금지원 규모도 97년 2400억원에서 99년 7500억원까지 늘어났고 방식도 이자부담이 있는 단순융자방식을 줄이면서 투자방식의 지원을 확대했다.

개인이 창투조합에 출자할 경우 투자수익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에 사채업자가 차명계좌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제공돼 있다. 이처럼 무차별적 지원이 이뤄지자 한국디지탈라인처럼 인수합병(M&A)으로 덩치만 키우는 ‘무늬만 벤처’인 기업도 나타난 것.

▽시장활성화는 과욕, 시스템정비는 부실〓정부는 코스닥시장 부양을 위한 각종 조치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반면 일부 벤처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나 ‘작전’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은 없었다. 코스닥시장의 인프라도 거의 갖추지 않았다. 정부가 벤처붐을 일으키면서 증권업협회 중개시장에서 변모한 코스닥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지 못하는 기업들이 기웃거리는 ‘2진’에서 일약 증시의 스타로 떠올랐다.

▼코스닥 작전감시망 허술▼

▽코스닥 주가작전 감시시스템도 없었다〓증권거래소의 경우 주가가 이상조짐을 보이면 바로 잡아낸다. 그러나 코스닥에서는 직원들이 일일이 수작업을 하면서 살펴볼 정도로 ‘작전’을 감시할 체제가 전혀 갖춰 있지 못했다. 당시 코스닥 ‘작전세력’들은 “거래소시장에서는 주가가 조금만 올라도 이상매매 흔적이 잡히고 주가추적조사를 하지만 코스닥은 모든 주가가 오르는데 어떻게 잡아내나”며 당국을 비웃었다.

▽개선책은 없는가〓삼성경제연구소 김정호 연구원은 “지금처럼 벤처지원기금을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가능성 있는 벤처기업은 충분히 지원하되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스스로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벤처기업의 성장단계와 업종특성 등을 고려해 지원규모와 내용을 차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직접적인 지원은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활·최영해·김두영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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