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퇴출기준 발표 연기]수위조절 의혹눈길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54분


금융감독위원회의 기업살생부 발표가 5일로 하루 연기되자 은행과 기업들이 큰 혼선을 빚고 있다. 이미 한차례 미뤄졌던 데다 재차 지연되자 ‘퇴출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일부 대기업의 거센 항의와 정치권의 로비 때문에 가이드라인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4일 발표될 예정이던 부실대기업 회생 퇴출기준(가이드라인) 발표가 5일로 늦어진데 대해 은행 산업계 등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다. 금감위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면 투명한 기준을 하루빨리 제시해야 하는데 이렇다 할 지침도 없이 시간을 끌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금감위는 9월22일 ‘2단계 금융구조조정 추진계획(블루프린트)’을 발표할 때만 해도 가이드라인을 9월말까지 마련한다고 했다. “10월중에 회생할 기업과 퇴출돼야 할 기업을 확정하려면 가이드라인을 하루라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준비미비’를 이유로 9월을 넘긴 뒤, 이달 2일에 4일 확정해 해당은행에 통보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런데도 개천절 연휴를 지내고 난 4일에도 “아직 최종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발표를 미뤘다.

금감위가 발표를 미룬 것은 ‘설익은’ 기준을 제시했을 경우 은행과 기업체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 탓이다. 건설 해운업체 등 업종성격상 부채비율이 높다든지, 설립된 지 몇년 안된 기업처럼 이자보상비율이 낮은 경우가 있는데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지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단의 최종책임은 채권단에 있는 만큼 은행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당초 금감위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로 한 것은 은행과 기업에 맡겨놨더니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장신뢰가 떨어지고 자금시장이 경색되는 등 부작용이 있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퇴출돼야 할 기업을 정리하겠다는 블루프린트가 발표되자 주가가 상승한 것은 이런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는 이해당사자의 반발과 언제 부메랑으로 날아올지 모르는 책임 때문에 주춤주춤하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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