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自 그룹분리 '공정위 伏兵'…"왕회장 지분 3%이내"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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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이 자동차 소그룹의 계열분리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 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공정위는 최근 현대와의 협의과정에서 현대자동차 소그룹이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려면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명예회장이 가지고 있는 현대자동차 지분(현재 6.9%)을 3%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왕회장'이 현대건설 등 현대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처분하고 명예회장직에서 사퇴했지만 현대그룹에 대한 '왕회장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직까지 없다고 공정위는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왕회장 소유의 자동차지분을 일부 팔지 않는한 자동차그룹분리는 어렵다는 것.

공정위의 '주문'은 계열분리를 서두르는 정몽구(鄭夢九)회장 주도의 현대자동차소그룹보다 오히려 정몽헌(鄭夢憲)전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한 현대그룹쪽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몽구회장이 경영퇴진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왕회장'의 지분을 낮출 경우 그룹측은 정몽구회장에 대한 최후의 견제수단을 잃게 된다. 또 정몽구회장의 현대차그룹 경영권 유지를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높다.

이와 반대로 현대자동차측은 공정위의 제동을 두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다. 현대그룹측이 하루빨리 공정위의 촉구를 받아들여 계열분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

사실 정몽구회장측은 지난달 지분정리과정에서 정명예회장이 자동차 지분을 대거 사들이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찜찜해했다. 왕회장 마음먹기에 따라 정몽구회장의 경영권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 더욱이 경영일선 퇴진을 거부,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있는 정몽구회장으로서는 최악의 가능성을 상정해볼 때 왕회장의 지분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구도 때문에 현대그룹측은 공정위측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했고 지분마저 처분했기 때문에 현대그룹과 정주영 회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항변하면서 왕회장의 지분처분없이 계열분리를 승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룹측은 공정위가 자신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정몽구회장의 퇴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계열분리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3父子 회동…대화내용 관심▼

한편 정씨 3부자는 9일 오전 7시경 정명예회장이 새로 이사를 간 서울 가회동 자택의 수리기간동안 머물고 있는 청운동 자택에서 일주일만에 회동했다.

정몽헌전회장 측근에 따르면 왕회장은 이날 정몽구회장에게 "너 나가라는데 왜 안나가냐"며 호통을 치고 경영퇴진을 수차례 촉구했다. 질책이 계속되자 정몽구회장은 찡그린 표정으로 자리를 먼저 떴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반면 정몽구회장측은 이날 모임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귀국인사차 들린 것에 불과하며 정몽구회장의 경영권 유지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왕회장이나 정몽구회장이나 입장변화가 없음을 확인하고 헤어진 셈. 특히 오랫동안 정명예회장의 말에 절대복종했던 정몽구회장은 이제 아버지앞에서도 경영퇴진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결국 정몽구회장의 경영퇴진 문제와 그룹분리 문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정주영-정몽헌씨 부자와 정몽구씨와의 갈등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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