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회장' 정주영, 몽구회장 정말 칠까?]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55분


정주영(鄭周永)전 현대명예회장의 3부자 경영일선 동반퇴진 선언과 몽구(夢九)회장의 반발 이후 현대그룹은 경영구도에 대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일주일째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급박하게 전개되던 드라마가 갑자기 사진처럼 정지된 듯하다.

하지만 이런 침묵을 “현대가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했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오히려 ‘폭풍전야의 고요함’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현대 안팎의 모든 사람이 숨죽이며 응시하는 시선의 끝에는 ‘왕회장’이 있다.

‘왕회장’이 항명을 그냥 눈감아줄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몽구 회장이 가문을 이어갈 장남이고 환갑을 넘긴 자식일지라도 예외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사퇴거부에 수습책 골몰▼

현대 관계자들은 최근 ‘왕회장’의 행보로 볼 때 몽구 회장의 반발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달 들어 칩거하다시피 청운동 자택에만 머물고 있다. 측근을 집으로 부르는 일도 없었다. 7일 오전 이달 들어 처음으로 그룹 본사에 잠깐 들러 정몽준(鄭夢準)의원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 등과 함께 점심을 한 뒤 자택으로 돌아갔지만 역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현대관계자들은 전했다.

재계에서는 아버지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몽구 회장이 아버지의 결정에 정면 반발하면서 현대자동차 이사회가 몽구 회장의 해임을 거부하자 ‘왕회장’이 마땅한 수습책이 없어 고민 중인 것으로 해석한다.

최측근 가신들조차 ‘왕회장’이 강공책을 선택할지, 타협안을 제시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몽구 회장은 미국으로 출국한 뒤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표면상의 출장 명목은 미국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와의 제휴추진 및 미주본부 회의주재. 그러나 냉각기를 가지면서 아버지가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이해할 만한 시간을 벌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여론의 향배를 지켜볼 목적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결제쌓여 업무 거의 마비▼

총수가 이런 상태이니 자동차 그룹의 중역들이 제대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업무추진이 안된다”고 직원들이 불평할 정도.

여기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노사분규의 조짐이 있고 신차발표회도 연기되는 등 분위기는 아직도 뒤숭숭하다.

자동차를 제외한 현대그룹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몽헌(夢憲)회장이 갑자기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사장단들은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리는데 익숙지 않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구조조정본부 역시 자신들의 기능과 위상을 어떻게 재정립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 더구나 일부 계열사는 아직도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상태다. 현대의 고위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 때문에 축제분위기를 망치지 말자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자동차소그룹의 경영구도는 6월 중순 이후에나 결론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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