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債, 금리하락 '功臣'…부유층 5∼10억씩 구입

  • 입력 2000년 2월 2일 19시 10분


내년부터 실시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앞두고 부유층의 여유자금이 분리과세 대상인 만기 5년의 장기채권으로 몰리면서 시장금리를 떨어뜨리는 부수효과를 내고 있다.

올들어 급등세를 보이던 3년만기 회사채 등 주요 시장금리가 지난달 중순 이후 일제히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장기채 매입용 뭉칫돈이 자금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채권거래를 부추긴 영향이 크다는 분석.

한국은행 관계자는 “작년초 돈많은 개인들의 지갑에서 나온 돈이 외환위기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를 되살린 현상이 이번엔 장기채를 매개로 시장금리 쪽에서 재연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왜 장기채가 인기인가〓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시행되면 부부합산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분을 다른 소득과 합한 뒤 이에 대해 최고 40%까지 세금을 물린다. 하지만 만기 5년 이상 채권은 이자소득에 대해 30%(주민세 포함 33%)의 세금만 내면 된다. 따라서 굴리는 돈이 많을 수록 장기채권을 선호하게 돼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 중인 5년만기 채권은 국민주택채권 1종과 국고채 외평채,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지역개발공채 등이 있지만 이중에서도 정부가 국민주택 건설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민주택채권의 인기가 높다.

이 채권은 표면금리가 연 5%로 9%대인 국고채 외평채보다 4%포인트 이상 낮아 이자소득세를 덜 내도 되고 유통시장이 폭넓게 형성돼 있어 환금성도 뛰어나다. 상속세 증여세가 면제되고 자금출처를 묻지 않는 증권금융채권이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지역개발채 등 다른 장기채도 매입주문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 채권딜러는 “주로 서울 강남지역의 개인을 중심으로 한번에 5억∼10억원씩 사들이는 추세”라며 “일부 금융기관은 종합과세 시행이 임박하면 5년물 채권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물량을 미리 사두는 선취매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금융계는 작년 말 이후 개인이 사들인 국민주택채권 1종 물량이 3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금리하락의 일등공신〓대우채 환매 등에 따른 불안심리가 작용해 연 10%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시장금리는 1월20일을 고비로 안정을 되찾은 양상. 1월28일엔 3년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9.22%에서 9.01%로 무려 0.21%포인트, 3년만기 회사채는 연 10.24%에서 10.12%로 0.12%포인트 급락했다. 금리 오름세가 꺾인 시기는 장기채 매입주문이 몰린 때와 거의 일치한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

한국은행 김성민 채권시장팀장은 “의도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중과세를 피하려는 개인의 여유자금이 장기채로 몰린 덕택에 금리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5년물 장기채에 대한 수요가 지표채권인 3년물 금리와 1년이하 단기채권 금리를 연쇄적으로 낮추고 이는 다시 장기채권의 거래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는 것.

김팀장은 “대우채 환매만 무리없이 마무리되면 이같은 거래흐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한자릿수 시장금리’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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